세계의 정다운 무관심

알베르 까뮈, <이방인>

by 박선희

열다섯, 스물, 스물다섯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나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미래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그림 같이 행복한 모습이 나의 미래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그 외의 상황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다. 그리고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자잘하고 큰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나는 나의 세계가 깨지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뭘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만 일어나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만 놀랄만한 일들은 버젓이 일어났다. 나와 또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또 건너 건너의 무수한 인생들에 어렸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그 일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받아들일 수 없어서 괴로우니까 이해해서 받아들이기 위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나의 질문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라는 질문은 틀렸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수많은 일들이 나의 뜻과 상관없이 언제든 불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이었다. 지금까지의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렇다. 그러니 ‘왜’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이토록 무력한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인데 지금의 사소한 즐거움이나 기쁨을 충분히 느낄 것 외의 답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이방인은 그런 나에게 용기를 준 소설이다. 마지막 두 장을 읽으며 나는 너무나 가슴이 뛰었다. 엄청난 박력을 느꼈다. 5년 전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었을 때 나는 마지막 장의 열 줄 정도를 일기장에 옮겨 적었었다. 그리고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라는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그 문장들은 유효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지막 두 장을 통째로 일기장에 옮겨 적고 싶었다. 뫼르소가 인생을 대하는 어쩌면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 태도, 무엇에든 한 발 물러 서 있고, 동요하지 않고 깊이 관여하지 않는 그 태도, 그러나 좀처럼 변명하거나 과장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그 태도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궁금했다. 그러다가 직시하고 인정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뫼르소의 그 태도에 인생의 열쇠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뫼르소가 말했다. 모든 이들은 똑같이 특권을 갖고 있다고. 그 특권이란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는 특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살아내야지.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것은 너보다 더 강하다. 내 인생과 닥쳐올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것은 너보다 더 강하다. 내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내게는 있다. 그렇다. 내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으리라.’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은 자신을 찾아와 끈질기게 고백성사를 권하는 신부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 대한 확신은 내가 갖고 있다고 그러니 너의 기준으로 강요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먼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가 죽음이 가까워진 그날들에 남자 친구를 만든 일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아마도 다시 살아볼 마음이 든 것이리라고 뫼로소는 이해한다. 죽기 직전까지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리 겁 먹고 죽은 것처럼 살 것 없어. 절망하지 않는 것, 죽는 순간까지 살아있는 삶, 나는 뫼르소에게 그것을 배웠다.

사형수인 뫼르소도 엄마처럼 다시 살아볼 마음이 든다고 말한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다시 살아볼 마음이 들었다는 그의 독백에서 나는 한 인간의 존엄을 느꼈다.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은 뱃고동 소리이다. 저녁의 소음이나 거리의 풍경들에서 자신만의 만족을 느꼈던 뫼르소는 감옥 안에서도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받는다. 세계는 이토록 정답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세계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반면 세계는 뫼르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흘러간다. 나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생각했었다. 세계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구나. 내가 괴롭건 슬프건 세계는 내게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도 세계는 바람이 불고 해가 지고 해가 뜨고 꽃을 피우고 낙엽을 물들이는 일로 나를 정답게 위로해 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세계는 낮과 밤을 반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비록 나에게 무관심할지라도 세계의 그러한 씩씩함은 큰 용기를 준다. 뫼르소의 태도가 내게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세계와 형제처럼 닮은 뫼르소, 나도 그들을 닮고 싶다. 이 세계처럼 나도 뒷걸음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소중한 누군가 넘어졌을 때 씩씩한 나를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나는 이 세계를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