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선희 Apr 19. 2022

발톱 깎는 시간

한낮의 아름다움

부엌 베란다 창 쪽의 앙상했던 가지들에 이파리가 돋아나 반투명 창문을 닫아도 연둣빛이 어른거린다. 개수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연두색 이파리로 꽉 찬 베란다 창이 보인다. 낡아 빠져 더러운 베란다 벽쯤은 흠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나뭇잎이 꽉 찬 창이 마음에 든다.


환한 대낮에 마루에 혼자 앉아 발톱을 깎았다. 텅 빈 집에 톡, 톡 손톱깎기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틱, 틱이었나. 탁, 탁일지도. 한쪽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발톱을 깎다가 세운 무릎에 뺨을 기대고 짧게 까끌해진 발톱 끝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이 시간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고요하게 발톱 깎는 시간. 이런 시간들이 내게는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앞으로는 혼자 있을 때 발톱을 깎아야지, 밤 말고 낮에, 궂은 날 말고 맑은 날에, 그렇게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93.1을 처음 찾았을 때라거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했을 것 같은 짧고 소박한 산책길을 발견했을 때처럼 조용히 설렜다.


버튼만 누르면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채널같이, 언제든 찾아가 걸을 수 있는 산책길 같이 작고 사소한 즐거움을 많이 만들 것, 홀로 감탄할 것, 그 감탄이 멀리멀리 퍼져나갈 수 있게 깊게 감탄할 것, 우리 집 베란다 창을 두드리는 연두색 나뭇잎이 너의 마음을 흔들 수 있도록.

햇볕이 내리쬐는 날 창이 넓은 곳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즐거움
매거진의 이전글 공기의 말을 듣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