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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pr 30. 2022

태도가 멋진 사람

수미의 시백 파티

수미는 나의 친구로 대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사람의 관계란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 계속 변화하는데 우리의 관계가 변화한 지점은 내가 오사카로 떠나기 전, 사당에서 함께한 어느 저녁이 분명하다. 그즈음의 나는 여러 가지 문제로 괴롭고 쓸쓸했다. 그럼에도 그날 저녁 술자리는 매우 즐거웠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노래도 불렀으며 급기야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수미는 내가 오사카에 가 있는 동안 시를 써서 보내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기뻐했다. 나는 누군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그것도 아주 깊숙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오사카에 도착해서 허공에 뜬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첫 번째 시가 도착했다. 시는 시 홀로일 때도 있었고 안부의 편지와 함께일 때도 있었다. 시가 홀로일 때, 나는 시의 내용에 비추어 수미의 안부를 가늠했다. 많은 시 속에서 수미는 쓸쓸했지만 안부의 편지 속 수미는 씩씩했다. 나는 그 간격이 그대로 수미라고 생각했다. 홀로 사랑스럽고 쓸쓸하고 그러나 씩씩한. 수미는 내가 오사카에 있는 4년 동안 멈춤 없이 시를 보내왔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새벽에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열면 도착해 있던 그 시들, 그 소식들을 빼고 오사카를 떠올릴 수는 없다. 나의 오사카에는 분명히 수미와 수미가 보내온 시와 소식들이 함께하고 있다.


내가 돌아오고 나서도 수미는 간혹 시를 보내왔다. 그리고 어느새 백 편의 시가 모였다. 의미로운 일이었다. 나는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다. 백 편의 시가 모인 기념으로 여는 시백 파티.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를 읽었다. 백 편의 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몇 편 골라갔다. 시백 파티에는 우리의 지인들이 몇 함께했다. 혜원이는 또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혜원인데 집에서 담근 와인을 들고 와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너무 소중해서 아직도 마개를 따지 못했다는. 나는 너무 좋아서 와인을 꼭 끌어안고 맥주를 마셨다. 건우 씨는 시종일관 웃으며 함께 시를 읽어 주었다. 건우 씨는 목소리가 좋아서 시도 잘 읽는다. 황 피디는 이런 자리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좋다고 감탄했는데 무척 귀여웠다. 피곤해서 오지 않겠다는 우주에게 수미의 시를 몇 편 찍어 보내주었더니 잠시 후 어디냐고 연락이 왔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달려온 우주를 보는데 웃음이 났다. 오래 만나서 좋은 점이 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수미는 매우 행복했다고 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시를 읽었는데 근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시가 울려 퍼지는 술자리, 언젠가는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파티를 빛내주는 우리의 알코올. 파티엔 술이 빠질 수 없지

수미는 시를 쓰는 게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과감하게도 백 프로 이해했다. 시보다 시인의 시선을 사랑한다는 말도 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눈에 닿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얕보지 않고 지내는 일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 작은 의미들이 결국 나를 의미롭게 한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시를 쓰는 마음 같은 거 잃기 쉬울 텐데, 그 마음을 잃지 않은 수미의 자기다움이 나는 좋다. 시를 나누어주다니 정말 고마웠다. 수미 같은 사람이 가까이 있어서 좋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태도가 멋진 사람이 내게는 가장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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