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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y 11. 2022

형편없다는 소릴 들어도 발끈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깨끗한 마음 따위 이제 어디에도 없는데, 누군가 당신 참 형편없다, 고 하면 발끈 화를 내는 시시한 어른이 될까 봐 걱정이 된다. 두 달 전쯤인가 ‘4월 이야기’라는 일본 영화를 봤는데 너무나 깨끗해서 슬펐다. 두 번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스물의 첫사랑 이야기인데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슬펐다. 지금의 이 시간도, 앞으로의 나도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분명하게 단 한 번, 이라는 것을 알지만 앞만 보고 가고 싶지는 않다. 가끔 돌아보고 슬퍼한들 어때. 형편없다는 말을 들으면 나의 어디가 형편없는 걸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른 같은 거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지만 아마 누구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을 거야. 어른이란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나 타인의 눈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잇값 좀 하라는 말은 자주 폭력이 된다.

때 타지 않은, 눈부시게 흰 처음의 운동화를 아쉬워하듯 깨끗한 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워, 아름다워.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옛날에 내가 상처를 준 사람들이 몇 명 있거든? 너무 후회가 되는데 그때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이 또 그럴 것 같아. 너무 나쁜 건가?”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었을 때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는 게 인생이야. 니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너로 인해 상처받았을걸? 나도 그럴 테고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야. 살아간다는 자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 아니겠냐.”


이상한 일이지, ‘니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너 때문에 상처받았을걸’이라는 말을 듣는데 그 순간, 머릿속으로 파노라마처럼 상처들이 지나가는데 작심한 차가운 말이나 경멸하는 눈빛, 비꼬는 듯한 미소 말고 무심코 선택한 단어나 짧은 거절, 은밀한 싫증 같은 것들이 주었을 상처가 지나갔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내가 받았던 상처들도 떠올랐다. 그럼 이제 어쩌나, 주어버린 상처와 받아버린 상처를.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상처받는 건 마음이 깊어서다. 그러니 어쩌면 방법이 없어서 낮과 밤이 반복되는 것처럼 상처도 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일이 상처받으면 안 돼. 마음을 갑옷으로 무장해야 해. 그렇지만 그래도 가끔은,

“미안해. 그럴 마음은 없었어. 상처 입히려고 했던 거 아니야. 속상하게 해서 미안.”

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아,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가끔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상처는 그래야 아무니까.     


그때 미안했어. 상처 입히려고 했던 거 아니야. 속상하게 해서 미안.


깨끗한 마음 따위 이제 어디에도 없지만 무심하게 상처를 주고는 상처 주고받는 일쯤이야 당연한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다면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형편없다고 말해도 발끈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어디가 형편없는 걸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될까, 싶지만. 되려고, 한 번 해보려고.


2017. 5


* 일기를 썼을 , 저때의 나는 진심으로 남편의 말에 놀랐다. 나는 내가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니까.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싫었다. 노력했으니까 나는 적어도 상처를 주는 쪽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때는 누군가 숨만 쉬어도 상처가 된다는  저때는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도 상처가 되고, 누군가의 호의도 상처가   있다는  나는 정말 몰랐다. 지난 일기들 속의 나는 모르는  많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도 저때의 내가 알던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나인데, 어떤 면으로는 내가 아니라서 나는 요즘  개의 나로 살고 있는 기분이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서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나을까, 어느 쪽이  행복할까, 어느 생각이  맞는 걸까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바보 같이 나는 나를 두고 저울질한다. 가끔은 과거의 내가 부럽다. 4 이야기를 보며 스무  무렵의 사랑이 너무 깨끗해서 슬펐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슬프다. 돌아갈  없어서, 더는 예전 같지 않아서 슬플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은 싫어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그냥 나야. 좋아, 싫어로 판단할  있는  아니라 그냥 이게 나다. 예전엔 저렇게 생각했고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모든  그냥 나다. 나는 그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깨끗하고  웃고  행복하더라도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마트료시카 인형을 생각한다.  안에  내가 있고  내가 있고  내가 있는 마트료시카 인형을 생각하며 나는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안심해. 행복했던 너도 어디 가지 않고  안에 남아 있을 테니까. 오늘 밤은 나에게 그런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형편없다는 말을 들어도 발끈 화를 내지 않고 나의 어디가 형편없는 걸까 돌아볼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될까, 싶지만 한번 해보려고. 그러고 싶다.

언젠가의 나도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내 안에 남아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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