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의 일기
* ‘오사카의 일기’는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오사카 벤텐초에 살며 쓴 글입니다.
교무실 내 자리에 앉으면 앞의 창으로 바다가 보인다. 가끔 아주 커다란 배들이 짐을 잔뜩 싣고 천천히 지나가고 구름은 바닷가 구름 아니랄까 봐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이내믹하게 아름답다.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교무실에 앉아 바다며 배, 구름을 보고 있으면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는 이 말을 싫어하셨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 나는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할머니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내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리며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복 달아나.
그 뒤로 운이 좋다는 둥 하는 말은 입에 잘 담지 않으려고 한다. 아끼는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등짝을 후려쳐서라도 복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몇 번 기회를 놓쳤다. 할머니처럼 마치 무슨 큰 비밀이라도 들킨 양, 말 끝나자마자 후려쳤어야 하는 건데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내 등을 후려치던 할머니의 손이 사랑이라는 거 그때나 지금이나 안다. 가끔 길에서나 지하철에서 우리 할머니와 닮은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나중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병실에만 누워 계셨어서 얼굴이 아주 뽀얗고 예뻤다. 우리 할머니처럼 얼굴도 머리카락도 하얀 할머니들을 만날 때면 멀리서도 혼자 웃는다. 빙그레 소리 없이 웃다가 코가 매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인간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옥수수를 삶았고, 자기 전엔 반야심경을 외웠다. 고속 터미널에서 파는 물냉면을 좋아했고 심심하면 민화투를 쳤다. 함께 누우면 할머니의 더운 숨이 쉭쉭 내 이마에 와닿았다. 어렸을 땐 할머니랑 같이 누워 자는 게 그냥 좋았는데 커서는 할머니의 더운 입김이 싫어서 잠결인 척 돌아누운 적도 많다. 할머니는 내 인생 수없이 많은 페이지에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어디 갔을까? 분명히 있었는데 더 이상 볼 수 없게 사라져 버리다니 나는 그게 너무 꿈만 같고 이상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죽음의 진짜 얼굴을 몰라서 할머니가 그 뽀얀 얼굴로 이 세계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 만 같다. 틀니를 끼우지 않은 나중의 할머니는 검은콩 두유를 좋아했다. 어딘가 아주 크고 푹신한 침대 위에 앉아서 쪼그라든 입으로 빨대를 물고 우유갑이 찌그러질 때까지 두유를 쪽쪽 빨아먹는 할머니를 상상하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할머니, 사실은 나는 요즘도 가끔 ‘운이 좋은 편인 거 같아.’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 근데 그러고 나면 할머니 말이 생각나서 깜짝 놀라. 그래서 마음속으로 ‘아 이 말은 취소!’라고 얘기해. 복이 달아나면 되겠어? 안 되지 안 돼. 할머니가 알려준 거 잊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 마. 고마워, 우리 뽀얗고 예쁜 할머니.
그러니까 알았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복 달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