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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r 09. 2022

쓸쓸함을 품고, 깔깔깔

어른이 된다는 것

친구들과 부산엘 다녀왔다. 친구들과 여행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었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아침도 부산역에서 먹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맥주병을 땄고 그때 이미 우리는 이 여행이 만족스러우리라는 예감을 했다. 우리는 엄청 많이 웃었다. 먹고 마시고 걷고, 먹고 마시고 걸어도 여전히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마치 새로 뜯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고 풀어써도 두툼하게 남아 있는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웃음이 났다. 하루 종일 논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지.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 보이던 해운대 거리

이른 저녁을 먹고 해운대 거리를 걸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들떠 보였다. 관광지의 저녁에 떠도는 나른하고 기대에 찬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돈도 시간도 많았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맥주 한 캔씩을 들고 파도가 가까운 모래사장에 앉았다.

 

날은 금세 어둑해졌다. 밤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은 우리는 언제 그렇게 웃었냐는 듯  말이 없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대신 각자의 바다에 잠긴 우리는 말없이 침묵을 나눴다.  번은 작게, 그다음 번에는 크게, 멈출  모르고 밀려드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땅이 기우는  같았다. 나란히 앉아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데 친구들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느껴졌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은 지고 있다. 누구도 대신 들어줄  없는 자기만의 짐이 있다는  우리는 이제 안다. 그래서 슬픔이나 고민에 대해 시시콜콜 털어놓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몫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짧은 대화로 마무리한다. 애써 설명하지 않고 굳이 묻지 않는  시간이 자연스러워  아름다웠다. 얘들아, 너희들의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기를. 밤바다에는 달그림자, 파도는 끝이 없었지. 멀리서 버스킹을 하는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도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 잠겨 있었다

친구가 몸을 뒤로 젖혀 모래사장에 눕길래 나도 따라 누웠다. 앉으나 누우나 떠날 줄 모르는 생각들이 있다. 실은 멈추지 않고 웃던 낮 동안에도 내내 마음에 붙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마음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그 생각들을 생각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지워지고 나와 바다와 달빛 그리고 생각들, 생각들만 남은 것 같았다. 떠들썩한데 고요했다. 몸을 받쳐주던 기분 좋게 차가웠던 모래나 기어이 불어와 마음을 쓸던 그 밤의 바람이 지금도 내게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우리는 쓸쓸함을 품고도 신나게 웃을 수 있게 된 걸까, 하고. 어쩔 수 없이 인생은 서글픈 면을 갖고 있으니까요,라고 어제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게 어른이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 밤의 우리는 그런 어른에 한 발 다가서 있었다.


각자의 슬픔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모래를 털고 일어나 또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걸었다. 길거리에서도 술집에서도 웃었다. 간간이 끼어드는 침묵도 두렵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고 와인을 사들고 숙소에 들어가 마시다가 또 맥주를 마시러 나갔다. 야경을 찍어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맥주를 마시며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연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의 사진도 부탁했다. 찍고 보니 보기 좋았다. 내가 찍어 준 연인들의 사진도 보기 좋았을까.

갑자기 왜 홍콩에 온 거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밤

다음날의 태종대나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시간들이 좋았지만 밤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침묵을 나누던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의 나는 우리가 굳이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뭔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달그림자가 비치던 밤바다의 말없음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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