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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r 11. 2022

마음속에 꽃이 피는 것 같아

봄에 꺼내보는 지난 가을의 일기

빈 벤치를 볼 때마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제는 빈 벤치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는데 왜 아름다운 건지 아직 모르겠다. 이유를 몰라도 좋아하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좋다. 바람이 차가워져서 저녁 산책을 할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해가 짧아지고 있는 게 요즘 가장 아쉽다. 노을이 오래 이어지는 하늘을 좋아하니까. 시월이 끝나서 아쉬운데 겨울은 기대된다. 아쉬움 하나, 기대감 하나 그렇다고 쌤쌤은 아니다.

반짝, 가로등은 가끔 나를 기분좋게 놀래킨다.

 어제 저녁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가로등이 반짝 켜졌다. 횡단보도에  발을 내딛자마자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짝!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공원에서는 남자아이들이 캐치볼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 던지기만 하고 번번이 받지는 못해 공을 주우러 다니기 바빴다.  번은 공이  앞까지 또르르 굴러왔고 남자아이가 멀리서 뛰어 오길래 공을 집어던져 주었다. 아이가  쪽을 향해 고개를 짧게  숙였다.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했는지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듣지 못했다.


공을 집어던져 주는 일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인데 하고 나면 늘 기분이 좋다. 버스에서 할머니나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누군가를 대신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는 일, 동네 경비원 아저씨나 붕어빵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유모차에 앉아 있는 모르는 아이들과 눈으로 인사하는 일들 모두, 아주 작은 것들인데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속에 꽃이 피는 것 같다. 모두가 이어져 있어서 작게 기분 좋은 일들이 파도 타듯이 옆에서 옆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내가 공을 던져 주어서 그 아이가 기분이 조금 좋아지고, 그 아이가 좋은 기분으로 던진 공을 친구가 나이스캐치 해서 그 친구도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진 친구가 집에 가서 씻고 밥 먹으라는 엄마 말에 응, 순순히 씻고 밥 먹어서, 엄마가 웬일로 한결 편한 저녁이라고 생각하며 아 동생은 저녁이나 먹었나 안부 전화를 하면, 동생은 그날 있었던 힘든 일을 누나에게 주절주절 털어놓고 마음이 가벼워져서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아르바이트생에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해서 일한 지 얼마 안 된 아르바이트생이 긴장이 조금 풀어지며 네 감사합니다, 하며 같이 생긋 웃게 되는 그런 기분 좋은 파도. 어머, 내 앞에 굴러온 공을 던져 주었더니 긴장한 아르바이트생이 생긋 웃었어. 이런 상상을 하면 작게 기분 좋은 일을 하고 돌아설 때마다 마음이 웃음으로 물든다.


파도처럼 스르르 촤아, 작게 기분 좋은 일이 당신에게, 그리고 또 당신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스르르 촤아, 하면 마음에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불이 반짝 들어오면 좋겠다. 오늘 파도 지금부터 시작. 와 벌써 신나네ㅋㅋ

길가의 꽃들을 주워 꽃다발을 만드는 것도 작게 기분 좋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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