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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pr 18. 2022

당신이 불행해서 내가 행복한 게 아닌 것처럼

작별의 노래

퇴근길에 맥주가 한잔 마시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고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았다. 찰칵, 캔 뚜껑을 따는데 마침 바로 앞에 있던 여자가 나를 돌아봤다. 편의점이 있는 건물에는 재활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잠시 바람 쐬러 나온 것 같았다. 병원복에 모자까지 쓰고 휠체어에 앉은 그녀는 시원한 저녁 무렵 캔 맥주를 따는 나를 부러운 듯 쳐다봤다. 그녀의 앞에는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로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 덕분에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벌써 집에 가자고 하면 어떡해. 어제 왔는데 내일 집에 가자면 어떡하냐고. 주말에 가기로 다 얘기하고 와놓고는 자꾸 이러면 안 돼.”

그녀를 나무라는 남편의 목소리에는 다정과 피곤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흘깃 그녀를 보았다. 입원한지 이틀도   집으로 가자고 재촉하고 있는 그녀는 그래도 될만큼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면  된다는 남편의 말에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에는 완강한 면이 있었다. 나는 아무말도 못들은 척 맥주를  모금  마셨다. 남편은 그녀에게서  걸음 떨어지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남편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었다.

“왜? 서운해?”

아이 달래듯 웃음 섞인 목소리로 남편이 물으니 그녀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한 번 가로저었다. 남편은 두 세 모금 더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는 휠체어를 밀어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왜인지 나는 눈물이 났다.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슬펐다. 많이 아픈 걸까, 아이가 있을 것 같은데, 아이는 누구랑 있을까, 엄마를 찾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와 그녀 남편이 좀 더 평안해졌으면 하고 바랐다. 요즘의 나는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


그녀가 들어가기 전까지 두 번 정도 눈이 마주쳤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그녀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부러웠을 지도 모르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내가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부러웠는데.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겠지만 안녕을 준비할 시간이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가족과 안녕할 시간이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이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던 거니까. 안녕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남편을 잃었으니까. 그러다 나의 좋은 점과 그녀의 나쁜 점에 대해 생각했다. 또 나의 나쁜 점과 그녀의 좋은 점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인이 행복해서 내가 불행한 것도, 내가 불행해서 타인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런 행복과 불행은 별 의미도 힘도 없다. 그런 거 아니잖아. 우리는 그저 우리 몫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이잖아.


예전의 나는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삶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일이 고통이고 매일이 괴로움이고 눈물일 거라고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그렇지만 이 인생에도 배고픔 즐거움 웃음 유머가 있다. 당연한걸. 다만 깊고 긴 슬픔이 바닥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남들보다 크게 웃고 자주 감사해하며 나답게 지내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예전보다 더 간절히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게 되었다는 것, 길에서 마주하는 당신, 모르는 당신들에게도 슬프고 괴로운 일이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되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 낙담한 표정이나 눈물은 너무 슬퍼서 모두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어제의 그녀, 건강을 되찾기를, 그래서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함께 그녀의 건강을 바라 줬으면 좋겠다.


201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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