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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pr 16. 2022

나 100살, 엄마 129살에

작별의 노래

지호는 잠이 들 때는 꼭 왼쪽을 보고 모로 눕는다. 나는 지호의 오른쪽에 누워 자는데 지호는 잠이 들 때면 꼭 내 오른손을 달라고 해서 자기 손에 포개거나 다리 위에 올려놓는다.

어제도 그런 자세로 자려고 누웠는데 지호가 “엄마, 엄마 얼굴이 안 보여서 무서워.”라고 말했고 그러더니 돌아누웠다. 눈이 마주쳐서 우리는 싱긋 웃었다.


엄마, 내가 100살이고 엄마가 129살 되던 순간에 1초도 차이 나지 않게 둘이 동시에 죽었으면 좋겠다.


지호가 말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호에게는 요즘 내가 너무 소중해서 어두워지면 나를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위험해, 나가지 마.


그럼 나보고 129살까지 살라는 소리야?

응. 1초도 차이 안 나고 동시에 같이 죽으면 좋겠다.


지호는 열한 살인데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그게 마음 아프다.


알겠어. 그럼 노력해 볼게. 129살까지 살 수 있도록.

꼭이야.

그런데 너 그때 되면 니 남편이랑 딸이랑 아들만 챙기고 그러는 거 아냐?

아 맞다. 나도 결혼을 하겠구나. 그럼 됐어.

뭐어?


너무 쉽고 명쾌하게 그럼 됐다고 말하는 게 웃겨서 나는 깔깔 웃었다.


너 너무 한 거 아냐?

아니야, 아니야. 취소, 취소. 그냥 나 100살이고 엄마 129살에 같이 죽자.

됐어, 너 진정성이 없다.

아니라니까.


지호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미안해하며 나를 따라 막 웃었다. 우리는 한참 같이 웃다가 결국 지호 100살, 나 129살에 같이 죽기로 약속을 했다. 지호는 흡족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는데 나는 그러고도 한참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힘들었다.   

인생에는 삶과 죽음이 있는데 나의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타인의 죽음을 겪고도 우리는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 시작과 끝처럼 삶과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이 들었다.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 걸까.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어, 그 말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지 자꾸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걸까 스스로 묻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으니까 이건 필요 없는 질문인 걸 아는데 앞으로 한 발, 그게 갈수록 어렵게 느껴졌다. 사라짐, 그 없음의 자리가 점점 넓게 번지고 번져서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자주 울었다.


하나의 존재가 얼마나 무겁고 소중한지 나는 그 존재가 사라지고 난 후 너무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가 이곳에 발자국을 남겼는데. 길고 긴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티끌만큼도 되지 않을 무수한 발자국 중 하나겠지만 많은 것 중의 하나, 작은 것 중의 하나라는 게 의미 없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몫의 인생을 아주 버겁게 느끼고 있다.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를 흘려보내고 오늘은 똑바로 쳐다보려 애쓰고 있다.


며칠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 아빠의 숨소리를 들었다. 새벽의 숨소리, 지호와 엄마, 아빠가 내는 숨소리, 요즘 가장 아름답고 나를 가장 안심시키는 것은 잠든 가족들이 내는 고른 숨소리다. 먼저 잠든 지호의 숨소리를 들으며 어젯밤 나는 안도의 미소를 자주 지었다. 새벽에 문득문득 두려운 마음에 지호의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따뜻한 숨을  번이고 확인하던 밤들. 살아 있다는  당연한  아니라서 불안을 떨칠  없는 밤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지만 예쁜 우리 딸에게 사랑을 듬뿍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똑똑한 엄마는 못된다. 나도  알고 있다. 가끔 주위의 똑똑한 엄마들을 보면 내가 잘하고 있나 자신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나만이   있는 특별한 것이 있겠지 믿기로 했다. 그래 예쁜 지호.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날  있는 아이로 자랄  있게 엄마가  마음을 다해 사랑을 줄게. 지호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그리고 잠든 지호의 손을  잡고 나도 잠이 들었다. 여보 나에게 힘을 줘, 마음으로 부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숨소리만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겠지만, 잊지 마, 당신의 숨소리는 모든 것의 시작이야. 오늘도 당신이 살아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살아 있어서 지호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서 나는 이 순간이 눈물 나도록 고맙다.


2018.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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