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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pr 22. 2022

그 여름에 만난 기적

작별의 노래

여름 저녁,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도 돌아서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나의 몫이 있다는 게 어느 때는 너무 벅차다.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어서, 두려워지는 그런 순간. 나를 혼자 두지 마,라고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은데,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도 나를 혼자 두지 마,라고 말하기가 싫은 게 짐이 되는 건 딱 질색이니까. 짐이 되는 것보단 외로운 게 더 나아. 헤어지기 싫어, 혼자 걷는 게 무서워, 내가 나를 잘 데리고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래도 나는 걸으며 생각한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도 아름다운 건 아름다우니까. 계절의 덕도 본다. 걷기 좋은 날씨,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작은 빗방울, 여름 저녁의 공기, 스무 걸음에 한 번씩 간간이 스치는 풀냄새 같은 것. 잊지 말아야지, 이 순간 내 마음에 솟아난 용기, 오늘의 공기 같은 것.

잊지 말아야지,하고 여길만한 그런 순간들이 찾아와 줘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행, 다행, 다행의 순간들을 이으며 걸어간다. 오늘도 길을 잃지 않고 집까지 잘 도착.


2018. 6


- 남편을 보낸 해에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함께일 수는 없어서 만났다가도 헤어져야 하는데 나는 그 헤어짐이 무서울 때가 많았다. 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나는 다시 혼자일 텐데 어쩌지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가지 마, 나랑 더 있어.’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말은 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저 일기를 쓴 날, 나는 정말 친구를 붙잡고 싶었는데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라고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그때 돌아오던 길이 어디였는지, 그때 그 길에서 얼마나 무섭게 쓸쓸했는지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서, 풀 냄새가 나서, 늦은 저녁까지 밝은 여름의 햇빛이 고마워서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아주 작은 용기가 마음 속에서 솟아났다. 기적 같았다. 뭘까 이 아름다운 용기는.

뭘까 이 아름다움은. 왜 아직도 세계가 아름다운 거지? 의아했던 여름

뭘까, 왜 아직도 이런 마음이 내게 남아 있는 걸까. 실은 아주 의아했는데 그래서 깊게 안도하기도 했다. 그래, 이런 순간들이 아직 남아 있다면 해볼만 해. 견뎌낼 만해,하고 생각했다. 그 여름에 내가 만난 기적 같은 마음.


그때는 그것이 자연이 준 선물이라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그것은 친구의 사랑 덕분인 것 같다. 친구와 마주 앉아 울다가 웃다가 하던 그 시간들 덕분에, 그때 친구가 내 마음에 뿌려준 사랑의 씨앗 덕분에 가능했던 기적.


알아? 우리를 일으키는 건 언제나 사랑이다.


남편을 잃은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하찮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인생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가느다란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그때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또 힘을 얻는다. 때로는 쓰러진 마음을 일으키는 게 바다를 가르는 일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 도무지 일으켜 세워지지가 않아. 그럴 때, 네 마음이 힘을 잃었을 때, 사랑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 나의 사랑으로 네 마음을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알맞은 햇빛과 공기를 만났을 때 언제라도 싹을 틔워 네 마음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사랑의 씨앗이라도 심어 주고 싶다. 그렇게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허무하고 지루한 이 세계에 지쳤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모처럼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지나간 일기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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