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노래
어제는 설거지를 하고 빈 세제통에 세제를 채워 넣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1층과 5층 사이를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지난 주말에는 세탁소에 세탁물을 갖다 맡기고는 지호와 조카를 데리고 예방접종도 다녀왔다. 식구들과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는데 같은 장면에서 웃고 별 거 아닌 대목에서 울었다. 대수로울 것 없는 이런 일들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자주 안도에 가까운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남편을 보낸 후 나는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지내왔다. 오늘 하루도 살아냈구나. 그렇게 살아내다 보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안도에 가까운 행복도 느끼게 된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그 사이사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란 말을 자주 생각했다. <이방인>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저 말이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다. 머리로가 아니라 온몸과 마음으로 저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해왔던 모든 경험들이 저 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든 것 같았다. 정답지만 무심한 세계 속에서 나는 어제 오랜만에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실수라고 할 만한 것들을 다시 되돌리는 꿈을 꾸었다. 그때 더 오래 꽉 안아줄걸, 그날 나가지 말라고 붙잡을걸,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저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꿈속에서 실천했다. 그렇지만 알았던 것 같다. 이게 꿈이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남편이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꿈속에서 나는 되돌렸었나? 그 후는 모르겠다. 깨고 나니 마음이 공허했다. 날이 어슴푸레 밝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캄캄한 새벽에 깨어나는 게 요즘의 나는 가장 견디기 힘들다.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공허함이 무서웠다. 공허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렵고 울면서 매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사람이 될까 봐 두렵고 내 아픔만 가장 큰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내가 겪은 것들만이 진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까봐 그것도 두렵다.
그러나 공허한 꿈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어제 행복했다고 오늘까지 행복한 건 아닌 것처럼.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요즘의 나는 세계의 비밀을 한 꺼풀 벗겨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발견해내고 있다. 이 세계의 진짜 얼굴을. 세계는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겠지. 그래서 내가 발견해 낸 얼굴을 너는 진짜라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매일 생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바람이 불고 노을이 지면 내 마음은 충만한데 바람이나 노을은 내게 관심이 없다. 지난 금요일의 달은 무척 아름다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애가 탔다. 내가 애가 타거나 말거나 달은 홀로 계속 아름답다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빛 속으로 사라졌겠지.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세계는 아무 관심 없이 그저 흘러간다. 계속된다. 한없이 정다운데 세계는 나의 삶에 관심이 없다. 정답고 무관심한 이 세계, 세계가 그러하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세계야 너는 씩씩하구나. 흔들림이 없구나. 그리고 잠든 지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는 어떻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있을까 다시 한 번 놀랐다. 이 세계처럼 나도 뒷걸음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지호가 넘어졌을 때, 뚜벅뚜벅 걸어온 나의 뒷모습을 보고 용기낼 수 있게 나는 세계처럼 살아내고 싶다.
밤이 아침이 되고, 아침이 밤이 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세계. 그 세계처럼 씩씩하게 살아내다 보면 기쁨도 슬픔이 되고 슬픔도 기쁨이 되겠지. 그러니 의연할 것. 그러나 밤과 아침이 서로의 반대가 아니듯 슬픔과 기쁨도 반대에 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잊지는 않았으면 한다. 세계는 쉽게 둘로 나눌 수 없고 이 세계를 이루는 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품고 있는 것이라는 걸 놓치지 않는 사람으로 이 생을 살아내고 싶다.
201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