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선희 May 03. 2022

남편의 첫 번째 생일

작별의 노래

11월에 남편의 생일이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처음 맞는 생일. 오래전부터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을 했다. 그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냈다. 저녁에 퇴근하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에 미역국이라도 끓여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기랑 미역을 사들고 가기는 했는데 미역국을 끓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서 못할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이라면 괜찮을 테지만 그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할 엄마, 아빠를 생각하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맥주를 한 캔 샀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저녁에 지호랑 텔레비전을 보며 캔을 따서 옆에 놓아두었다. 맥주 캔 하나만 덜렁 놓아두자니 쓸쓸해 보여 귤이랑 치즈도 꺼내왔다. 지호랑 웃으며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맥주 캔에 눈길이 갔는데 남편 같았다. 눈을 자꾸 질끈 감게 되었다. 잘 준비를 한다고 지호가 이를 닦는데 나는 맥주를 따라 버리지 못했다. 맥주 캔을 치우고 맥주를 버리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버릴 수가 없었다. 한 모금도 줄지 않은 맥주가, 자기 껀데 한 모금도 줄지 않은 맥주가 이상해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한 모금 마시고 그래도 버릴 수 없어서, 버리지 못하고 부엌 창 옆에 올려두었다.


여보 내가 이것밖에 못해줘서 미안해. 그 늦은 밤에 나는 번듯하게 상을 차려줄 걸 후회가 되었다. 어디에도 없으면서 나를 아프게 하지 마.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남편은 늘 그랬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신을 믿느냐고, 죽음 이후의 세계라는 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나는 미역국 같은 건 끓이고 싶지 않다. 미역국 같은 거 나를 위해 끓이는 거 아냐. 혹시라도 모를 당신을 위해 끓이는 거야. 나는 미역국 같은 거 끓이는 거 힘들어. 맥주 캔도 따 놓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나를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잊고 싶은 거 같다. 잊어버리고 싶은 거 같아. 떠올리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괴로워서 그냥 잊어버리고 싶은 거 같다. 그런데 잊어버려도 되는 걸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힘껏 흔들며 지워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겨울을 나는 나무를 위해 따뜻한 옷을 입혀 준 손길. 나도 그런 손길들 덕분에 매서운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괴로움, 괴로움, 괴로움은 아니다. 슬픔 속에 웃음, 괴로움 속에 농담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슬픔보다 웃음이 더 많아지고 괴로움보다 농담이 더 힘이 세지는 날이 오겠지.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인생은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과 같은 거라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잔 속의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 매일 해가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씻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한다.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하고 그렇게 내 몫의 물을 꿀꺽꿀꺽 삼킨다. 그런 일상에는 묘하게도 강한 힘이 있다. 나도 몇 번이고 느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났는데 미역국을 끓여야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미역을 담가 불리고 소고기를 달달 볶아 미역국을 끓였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끓여서 지호도 먹이고 나도 먹었다. 우리 몫의 밥과 국을 뜨기 전에 남편 몫을 먼저 떠 두었다. 늦어서 미안했어. 생일 축하해 여보.

아름다운 걸 보면 함께 보고 싶어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

아마 아직도 한참,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벌써 12, 올해가 끝나간다. 올해의 끝도 오기는 오는구나. 오늘 아침에는 눈이 온다. 아름답게, 아름답게 내린다. 언젠가 남편은 그런 시를 썼다.  오신다, 벚꽃  오신다 그렇게 시작하는 시를 썼었다. 우리를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길 바란다. 아름답게, 아름답게.


2018. 12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하루도 살아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