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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Jun 10. 2022

멀리 돌아 집으로 가던 날들

작별의 노래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일부러 가까운 길을 두고도 멀리 돌아서 돌아서 가던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족들을 마주하기 위해서, 혼자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ㅁ자 모양으로 돌아서 집에 가기도 했고 ㄹ자 모양으로 돌아서 가기도 했다. 그 길에서 나는 마음을 꼭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남편이 떠난 일을 특별한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나를 탓하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흘려보내려 노력했다. 보고 싶다거나 못 견디겠다거나 막막하다, 허전하다, 미안하다 그 모든 것들을 표현할 말은 ‘괴롭다’ 뿐이었다. 괴로웠다. 마음을 어쩌지 못할 만큼 괴로웠는데, 괴롭고 싶지 않았고 너무 괴로워도 안 된다는 생각을 그 와중에도 했다. 너무 괴로워해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무서웠다. 앞으로 한발, 하루에 반 발자국이라도 가기 위해서 나는 너무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자주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멀리에 두려고 했다. 바람이나 노을 위에 눈길과 마음을 얹어 두었다. 나무를 올려다보며 초록이나 빈 가지, 햇살 같은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 노력했다. 바람이 불면 흔들흔들 함께 흔들렸다.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벤치를 보면 하염없이 앉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미루던 그때가생각나

노을을 보며 공허하게 앉아 있던 벤치 생각이 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물음을 반복한 채 넋을 놓고 앉아 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는 때때로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럴 때 말이야, 지나치게 생각하지도 지나치게 자책하지도 말고 그냥 흘러가게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흘러가, 그게 인생일지도 몰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시간들을 버텼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지연하며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노을은 늘 마음을 붙든다

요즘 일이 많아서 어제는 잠시 회사에 나왔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노을이 지길래 오래 걷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니야, 얼른 집에 가서 지호를 맞아줘야지.’하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놀러 나간 지호보다 빨리 집에 돌아가 있어야지, ‘어서 와’라고 말해 줘야지, 지호가 오는 길목에 마중도 나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때 그 시간들이 생각났다. 집에 가기 싫어서 빙빙 돌던 그 시간들, 그때가 떠올랐다. 혼자서 피식 웃었다.  그래도 많이 왔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늘 뜻대로 되지 않지만, 상황에 휘둘리는 마음을 갖고 싶지는 않다. 내 마음은 내가 잘 데리고 있어야 한다. 좋은 것들을 주면서, 달래면서, 아끼면서, 그러면 마음도 내게 좋은 걸 준다. 괴롭지 말라고, 고생이 많다고, 가끔은 쉬라고 평온한 시간을 선물한다.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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