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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Sep 18. 2022

무려 1천65억 분의 1이라고

김연수, <원더보이>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그건 우리가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에 어림잡아 3천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 중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별은 현재로서는 지구뿐입니다. 그래서 지구는 고독합니다. 이 고독은 3천억 분의 1의 고독입니다. 그 별들 중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이 하나라도 더 있다면, 이 고독은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때 지구의 밤은 지금보다 두 배는 밝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하나뿐입니다. 아무리 별이 많다고 해도 지구가 3천억 분의 1만큼 고독한 한에는 지구의 밤은 여전히 어두울 것입니다.      
<원더보이>, 김연수

    

왜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고 이렇게 혼란스럽지, 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게 살아가는 일인 걸까. 주말 내내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몇 년 전의 메모를 봤다. <원더보이>를 읽고 남겨 놓은 메모. 심각하고 무거워질 때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우리의 지구는 고작 3천억 개 중 하나다. 아무것도 아닌 거나 마찬가지지. 위대한 지구가 그런데 그중에 먼지 같은 나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의 혼란, 괴로움, 씁쓸함 모두 실은 한낱 연기 같은 거다. 그러니 한껏 가벼워져도 되는 거야. 무거울 거 하나 없어! 그렇게 나의 마음을 달래 보지만 아, 고독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독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고독하다 고독해. 이 글의 뒤에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호모 사피엔스의 수는 1천65억 명, 즉 지금까지 지구에서 1천65억 명의 사람이 태어났으며 그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건대 그중의 하나인 '나'란 존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의 밤도 지구의 밤처럼 어둡고 어둡기만 하다고 말한다. 3천억 개 중 하나인 지구에서 또 1천65억 명 중의 하나가 되다니 쪼개고 쪼개 보면 나는 점도 아니다. 점 위의 점 위의 점 위의 점 같은 것에 불과할 뿐이지. 맙소사. 점 주제에 뭐 이렇게 괴로운 일이 많은 걸까.


김연수는 물론 <원더보이>에서 어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연수는 말한다. 너무 작아 보잘것없는 그 고독이 단숨에 특별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에게 반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1천65억 명 중의 단 한 사람이 의미를 갖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단숨에 우리는 특별해지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 긴 역사 속에서, 1천65억 명이나 되는 사람 중에서 단 하나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 생각해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어째서 우리는 3천 억 개의 별 중에 지구에서 태어나 그 많은 나라 중에도 이곳에서 그리고 그 오랜 시대 중에 하필 지금, 왜 눈이 마주쳐 버린 거야. 그러므로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지구의 밤이 어두울 수는 없으며 그건 나의 밤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실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내 마음은 여전히 고독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1천65억이라는 수의 어마어마함, 그리고 그중 하나의 유일한 의미, 라는 사실은 몇 번이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서 우리는 그 1천65억 중의 단 하나의 의미와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만난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릴 수 없다.


저 별들,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 어둡고 고독한 먼 별, 오늘 밤 내일 밤 그리고 다가올 모든 밤, 매일 보는 밤하늘도 아니고 볼 때마다 찾을 수 있는 별도 아닌데 우연히 당신의 눈에 띈 별이 있다면, 3천억 개의 우연을 넘어서 당신이 볼 모든 별, 그 별은 모두 나라서, 당신의 눈가를 밝힌 그 흔치 않은 별을 마치 나처럼, 그 모든 별을 전부 나인 듯 바라봐 줘. 그게 나야. 그게 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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