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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Sep 09. 2022

권대웅과 쳇 베이커의 가을 아침

권대웅, <풀잎이 자라는 소리>

나무는 높이 자랄수록 땅속 뿌리를 듣는다

꽃은 햇빛을 듣고

새는 바람을 듣는다

침묵에도 소리가 있다

그것을 듣는 것

발밑에 풀잎이 자라는 소리

공간의 갈피 속에 살아남아 있는

누군가의 오래된 목소리

손짓 발짓 애타게 부르던 당신의 눈빛

노을이 떠나며 하는 말

저 먼 태양에서 내려온 햇빛이 주는 말

어둠 속 달빛이 가르쳐주는 방향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들

놓쳐버린 것들

듣기만 해도 표현이 되는 것이 있다

들을 줄 아는 것이 답변이 될 때가 있다

지금 이 소리들

<풀잎이 자라는 소리>, 권대웅


시를 읽다 보면 자주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기분이 든다. 졌다, 졌어.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는 기분. 작년 가을에 이 시를 처음 봤는데 어느 한 행 예외 없이 너무 좋아서 그날은 하루 종일 이 시를 외고 다녔다. 나도 모르게 ‘이 시를 처음 읽었는데’라고 말하지 않고 ‘처음 봤는데’라고 말했어. 그러고 보니 시는 자주 그림 같아서 읽는 게 아니라 물끄러미 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작년 가을에 왼 이 시가 마음 어느 구석에 남아서 ‘그래, 그때 왼 그 시’라고 종종 떠올렸었다. 소리 내어 시를 외우다 보면 눈으로 볼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른데 내뱉었을 때 유독 좋은 구절들이 있다. ‘공간의 갈피 속에 살아남아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작년에 이 시를 외는데 욀 때마다 저 구절이 유난히 쓸쓸하게 아름다웠었다. ‘공간의 갈피 속에 / 살아남아 있는 / 누군가의 / 오래된 목소리’ 나는 이렇게 네 번을 끊어 읽었는데 ‘살아남아 있는’에서 ‘누군가의’로 넘어갈 때마다 마음이 울렸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을 때가 있는데 어떤 기억이 떠올랐을 때 남편이 했던 말이나 어느 순간에 남편이 할 법한 말들이 들려오는 것 같을 때가 있는데, 공간의 갈피 속에 살아남아 있는 누군가의 오래된 목소리라니, ‘살아남아 있다’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요즘은 날씨가 무엇보다 시 같아서 아침부터 세수를 하고 시집을 폈고 저 시를 다시 읽어도 마음이 뭉클해서 기록하려고 노트북을 켰다. 스피커에서는 쳇 베이커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가 흘러나오고 있어서 나는 중간중간 눈을 감고 쳇 베이커의 목소리로 나를 꽉 채운다.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이런 순간의 충만이 내게 와 줘서 좋다. 좋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것 같지만 그 외의 말은 적당하지 않아서 ‘좋다’를 ‘좋기만 하다’로 고쳐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이제 ‘Everything happens to me’로 음악이 바뀌었고 마지막 즈음의 쳇 베이커의 스캣을 듣는데 시의 마지막 구절이 움직이며 내게 걸어온다고 느꼈다. 듣기만 해도 표현이 되는 것이 있다. 들을 줄 아는 것이 답변이 될 때가 있다. 지금 이 소리들.

침묵 속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섬세하고 보드라운 마음으로 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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