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잖아요

진연주 <코케인>

by 박선희
그런데 수면 친구는 또 뭐야? 굴드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말 그대론데. 잠들기 전에 오 분씩만 통화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그게 왜 필요하냐 그 말이야. 외롭잖아요. 담배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좇던 굴드가 좀머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좀머는 굴드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굴드는 불현듯 자신이 느꼈던 그 많은 밤의 혼란들이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비가 퍼붓던 밤, 어둠이 박꽃처럼 피어나던 밤, 가슴에 물혹이 자라나던 밤, 신경증이 도지던 밤, 시에 맛이 들려 끙끙 앓던 밤, 문장이 삶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던 밤, 검은 더께가 목을 짓누르던 밤, 그런 밤들이면 굴드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화를 내고 울고 조롱하고 떼를 쓰고 싶었다. 그저 가만히 숨소리를 듣거나 들려주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영혼에는 당신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잠들 때까지만 그렇게 있고 싶었다. 그것이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악몽을 꾸는 것도 잠결에 발기를 하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외로움이 들풀처럼 펄럭여서 그토록 몸에 힘을 주어야 했던 것일까. 외로움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토록 외로웠던 것일까. 그래서 담쟁이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타고 오르고 새들은 서로 날개를 부비고 물고기들은 동시에 뛰어오르는 것일까. 외로움은 지속하는 게 좋아. 잠시라도 쉬면 맛있는 거 해주고 달아난 엄마 기다리는 기분이 드니까. 굴드가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진연주, <코케인>


‘내 영혼에는 당신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라는 대목에서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 두었다. 어느 때의 나는 내가 소설을 읽는 건 문장을 수집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꼭 적어두거나 밑줄을 긋거나 접어두었다. 그 문장들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려서 덮어두었다가도 다시 펼치고, 어느 때는 소리 내어 되뇌기도 했다.


요즘 배우들이 나와서 합창을 하는 ‘뜨거운 씽어즈’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들이 첫 만남에서 노래로 자기를 소개하는 걸 보고 펑펑 울었다. 그래, 인간이란 저렇게 아름답지, 울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름답지 않은데 아름다웠다. 화려하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꿋꿋하게 자기 길을 걸어와 끝내 자기 자리를 만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를 소개하며 노래에 젖어드는 모습이 너무 뭉클하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보는데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무명을 거친 이서환 배우가 부르는 오르막길은 최고였다

예전에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 감각도, 센스도 있는 사람들이 멋지게 보였고 부러웠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쉬워. 그렇지 않을까? 쉽게 주목받고 환호받으니까. 어려운 순간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주목과 환호로 다져진 내력으로 그 순간들을 극복해 나간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삶은 조금은 더 쉬울 것 같다. 반대로 재능도 없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데 멈춰선 안 돼, 그래서 꾸역꾸역 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 정말로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 나는 위대함이나 아름다움은 실은 그런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얼마나 힘들어, 얼마나 포기하고 싶어, 그래도 내일이 되면 다시 일어서는 일을 반복해 온 친구들에게 사랑을 보낸다.

얼마나 힘들어, 얼마나 포기하고 싶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멈추고 싶은데 그래도 한 발 한 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한 발. 그 한 발의 무거움이 나의 마음을 흔든다. 힘든 일을 겪을수록 나는 사람들이 점점 애틋해진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너도 힘들겠지 싶어서 이해해 주고 싶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뿐이지만 알아주고 싶고 다독여 주고 싶다. 너무 나약하니까, 쉽게 상처받으니까. 각자가 각자로 사느라 고생이 많으니까, 아름다우니까, 눈물 나니까. 그래서 냉정하지는 말자고, 비정하지도 말자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외로운데, 밤에 잠도 안 오고 쓸쓸한데 수면 친구는 못 되어도 누군가의 잠을 방해하는 나쁜 기억을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쁜 기억까지 품고 밤을 보내기엔 지금도 충분히 벅차잖아. 충분히 힘들잖아.

충분히,

외롭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