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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pr 10. 2022

우리 노래하듯 헤어지자

작별의 노래

2018년 2월에 나는 남편을 잃었다. 이렇게 쓰면서도 나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남편과 나는 대학에서 만났다. 남편은 나보다 한 학번 위였다. 처음 남편을 본 순간이 생각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던 길이었다. 배를 타고 어떤 섬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서먹하게 앉아 있는 신입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선배들이 갑판 위로 올라가자고 했다. 순순히 따라 올라간 그곳에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흩날리고 담배를 한번 깊게 빨았다가 내뱉는 그 모습에 슬로우 모션이 걸렸다. 그 사람이 기척을 느끼고 우리 쪽을 돌아봤을 때 나는 내가 한눈에 반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사귀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도 일 년이 넘은 후부터였지만 6년을 사귀고 10여 년을 함께 살았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보내고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봄이 와서 꽃이 피고 새순이 돋았는데도 남편은 없었다. 살갗에 땀이 맺히는 여름이 와도, 이마를 서늘하게 식혀주는 바람 부는 가을이 와도, 코가 맵게 추운 겨울이 와도 남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내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기 위해 잠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빈 자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뻥 뚫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처음의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잔뜩 긴장을 한 채 시간을 보냈다는 걸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을까, 의아할 정도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집으로 돌아갈 때면 다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딸 아이가 기다리니까, 부모님이 계시니까.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매해 다르게 힘들었다. 괴로움은 매년 갱신되는 것 같았다. 괜찮은 것 같아, 그러다가도 어딘가 툭 꺾이고 나면 와르르 무너졌다. 이후에 내 인생에 찾아온 모든 괴로움이 남편이 없어서는 아닐 텐데 나는 그때마다 ‘남편이 있었으면 달랐을까’ 되뇌었다. 습관처럼 그 생각은 괴로움에 따라붙었다.


그러나 또 한편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 시간들을 지나왔고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긴 순간들도 많고, 이 정도면 많이 왔어, 안도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런 순간들은 전적으로 나에게 사랑을 쏟아 준 가족과 친구들 덕분이다. 그리고 쓰는 일. 쓰면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쓰고, 쓴 것을 다시 봤다. 쓰고 나면 그 일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내 마음을 털어놓고 한 발 물러서서 그 일을 바라보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편을 보낸 시간들에 대해 쓰려고 하는데, 그때 썼던 일기들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한동안 골몰하지 않았는데 오늘 남편에 대해 생각하니 그 목소리, 표정, 티브이를 보던 비스듬한 자세, 뜨거운 국을 마시며 땀을 흘리던 이마, 술 취해 꼬이던 발음, 헝클어진 머리, 짧게 끊어지던 웃음소리.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왜 당신의 웃음 끝은 항상 쓸쓸했던 것 같지.


얼마 전엔 남편이 남겨둔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다. 같이 공유하던 음악 앱에 있던 남편의 플레이리스트. 지금까지 두려워서 누르지 못했는데 얼마 전의 나는 용기를 내어 그 플레이리스트를 눌렀다. 노래를 듣는데 노래의 사이사이로 남편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런 노래를 좋아했었지. 왜 담아 두었는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보낸 나의 이야기가 어둡고 무겁지만은 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당신과 노래를 하듯 헤어지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했던 당신, 그 취향처럼, 슬프고 애틋하고 목이 메어도 듣고 나면 마음이 차오르는 멜로디처럼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당신과의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이 챕터를 ‘작별의 노래’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의 노래가 어딘가에 닿아 흐르고 흐르기를 바란다. 그렇게 흘러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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