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서 최고로 행복해지는 계절
산꼭대기에 위치한 전원주택이라 뷰 하나는 끝내주는 우리 집. 그 아름다운 뷰와 비례해서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길의 경사도는 체감 45도는 되는 것 같다. 물론 실제로는 말이 안 되는 경사도이지만 차를 타고 올라올 때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정상을 향해 가는 기분이 들곤 할 만큼 경사가 가파르다.
눈 내리면 눈을 치워야만 차가 내려가거나 올라올 수 있기에 눈을 치우고 몸이 고달파져야만 마음 편히 설경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지난겨울엔 특히나 눈이 자주 내렸다. 출근을 위해 눈 치우는 남편을 보며, 가족들이 출근한 뒤 눈이 내리면 나 혼자 치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주차장에 쌓인 눈을 쓸며 '이사'에 대한 생각을 수없이 했더랬다.
또 눈 예보가 있으면 비탈길 아래쪽에 차를 두고 걸어 올라오고 다음날 아이젠까지 장착한 채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내려가는 남편과 딸의 뒷모습을 볼 때에도 역시나 '이사'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남편과 나의 체력이 예전만 못한 것을 느낄 때마다 언젠가는 눈 치우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겨우내 했던 것 같다.
전원생활의 하이라이트는 '봄'이다. 전원생활을 해볼까 하고 갈등하는 사람에게 전원주택을 보여주고 설득하고 싶다면 당연히 봄에 보여주는 것이 확실하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전원주택의 봄은 찬란하다.
수고로움의 노력을 들이면 정돈된 아름다움을 가진 전원주택을 보여줄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저절로 피어나 어우러진 들꽃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살랑이게 만든다.
양평은 춥다. 특히나 산꼭대기에 위치한 우리 집은 산 아래 지역보다 더 춥고 그만큼 봄도 느리게 온다. 그걸 알면서도 3월이 되면서부터 마당을 나갈 때마다 꽃밭 앞에 꾸부리고 앉아 새싹을 찾고 나무 앞에 고개 젖히고 서서 나뭇가지에 움튼 꽃망울을 찾게 된다.
혹독한 겨울바람이 아닌 상쾌한 찬 바람을 맞으며 봄이 간질이듯 천천히 오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사진첩에서 작년 4월 10일에 앵두꽃이 저만큼 피었던 것을 확인하곤 꽃 필 날이 머지않았음에 마음부터 웃음 짓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눈엔 조금씩이지만 그들 나름으론 부지런히 꽃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아이를 키울 때 아직 옹알이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눈 맞추며 환하게 웃어주면 마음에 환하게 불이 밝혀지는 듯한 기쁨을 느꼈었다. 잊고 살던 그 소중한 기억을 해마다 소환해 주는 것이 활짝 꽃피는 봄이라는 계절의 마법이다.
벚꽃, 앵두꽃, 자두꽃, 꽃잔디, 철쭉, 홍매화 그리고 내가 심었던 여러 꽃들까지 부지런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시작할 4월이 기다려진다.
말라버린 풀들 사이로 초록빛이 보이면 그것이 잡초일지라도 초록색이라는 것만으로 반가워지는 것이 3월이다. 봄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을 주는 마법을 부린다.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4월이 가까워질수록, 전원생활의 하이라이트인 봄이 가까울수록 생각도 바뀌고 말도 바뀐다. 체력이 바닥나기 전에 눈을 치우지 않아도 출입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사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서서히 흐려져가고 있다.
집이 몇 채 없긴 하지만 이 동네에서 남편과 내가 가장 젊은 부부라는 사실도 겨울 동안 겪은 어려움을 아주 가벼운 추억으로 만드는 힘이 된다. '저분들도 쭉 사셨는데 우리도 할 수 있겠지' 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것 또한 봄이 가진 마력이다.
"겨울에 눈 치우는 것만 빼면 이 집만 한 집이 없어. 그렇지?"
남편의 말에 나도 마주 보며 웃었다.
전원주택에서 최고로 행복해지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