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중 장마철에 해야 할 일들
전원주택에 살면 장마가 시작되기 전, 배수로 청소는 꼭 해줘야 한다. 산속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후, 남편이 배수로 청소를 처음 했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배수로 청소를 하지 않았었는지 흙들이 쌓인 두께가 정말로 두꺼웠다. 배수로 청소를 해주지 않으면 흙과 나뭇잎들이 쌓여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게 되고 결국 넘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집이 있는 지반 자체가 약해져 위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진짜 1,2년 간 청소를 안 한 게 아니야"
"그냥 아예 안 한 거지"
"집 짓고 한 번도 배수로 청소를 안 한 것 같아"
배수로의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되면 모기가 알을 낳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가 된다.
"이렇게 청소하고 나면 모기가 많이 줄어들 것 같아"
"그러긴 할 것 같아"
"근데 비가 오지 않으면 모기는 줄지 않을 거야"
"그래서 당신이 전에 말한 대로 여기에 모기약을 수시로 뿌려줘야 해"
장마가 오기 전에 데크에 오일스테인을 칠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우리 집엔 마당 쪽에 길게 데크가 있고, 고양이 정원이 있는 곳에도 데크가 있다. 데크가 방부목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무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전체적으로 오일스테인을 덧발라줘야 한다.
장마를 대비해 미리 칠해야 해서 당장 내일 작업을 하는 걸로 업체와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작업하시러 오기 전에 데크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미리미리 치워놓아야 한다.
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천천히 피어올라 흐르는 물안개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물안개를 타고 선녀가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마실 가는 '산신'의 이동수단인가 싶기도 하다.
또 저 물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산 타고 내려오는 메리포핀스'를 보게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정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장마철에는 아침에만 물안개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오다 잠시 그치면 그때마다 물안개 장관이 펼쳐진다.
거실 혹은 다이닝룸의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들이 조금이라도 근사하다 싶으면 그 순간을 놓칠까 싶어 계속 바라보고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바다건 산이건 풍경 좋은 곳에 살아도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지나면 그런 풍경들에 그냥 무심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산속 집으로 이사 온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날마다 펼쳐지는 산속집의 마운틴뷰에 순간순간 감탄하며 지내고 있다.
장마 기간이라고는 해도 비가 오지 않는 날엔 화분에 있는 식물들에 직접 물을 줘야 한다. 우리 집 야외 수도는 남편이 만들었다.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그냥 배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걸 이용해서, 중간에 물통을 놓아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가득 담기면 흘러넘쳐 배수로로 들어가도록 남편이 작업한 거다.
나와 가족들은 남편이 만든 뒷마당의 수도를 이용해 화분들에 물을 주기도 하고 손을 씻기도 한다. 마당에 수도 시설이 없어 불편했었는데 남편이 만들어준 이 수도시설 덕분에 정말 편리하고 좋다. 더 좋은 건 공짜라는 거다.
상수도 시설이 들어오지 않는 전원주택에선 지하수를 쓴다. 지하수는 모터로 뽑아 올린다. 물을 사용할 때마다 모터가 돌아가기 때문에 수도세가 아니라 전기세가 늘어난다.
그런데 남편이 만들어준 수도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기 때문에 가뭄이 심한 경우를 제외하곤 사시사철 저절로 흘러나온다. 과학적 원리에 의해 설치한 거라 더 큰 통에 물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화분들 중엔 세차게 내리는 장맛비를 피하게 해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 특히나 꽃이 피어있는 식물이 담긴 화분들은 비를 맞게 되면 꽃들이 상하거나 떨어져 버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많은 비를 맞으면 꽃이 녹아버리는 사피니아와 피튜니아 화분들을 안전한 곳, 잎들이 우거진 단풍나무 아래에 두었다. 그곳이라면 많은 비가 내려도 직접적으로 꽃에 닿는 비의 양이 적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피니아와 피튜니아 모종을 종류별로 한 개씩 다 샀더니만 화분이 꽤 많아졌다. 처음엔 화분 하나당 한 종류씩만 심으려다가 화분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 한 화분에 두, 세 종류씩 심었다. 처음엔 앙상했던 모종들이었는데, 시든 꽃을 바로바로 따주면서 정성을 쏟았더니만 요즘은 한창 덩치를 키우는 게 보인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사피니아와 피튜니아가 이번 장마에 죽어버리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식물에게 보약인 비도 좀 맞으면서 세게 내리는 비는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렇게 찾은 곳이 단풍나무 아래였다.
피튜니아 화분뿐만 아니라 좀 연약하다 싶은 화분들은 모두 단풍나무 아래로 옮겨주었다. 혹시나 개들이 다가올까 싶어 빈 화분들로 경계를 만들어 주었다. 저 정도면 개들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높이이긴 하지만 경계를 만들어 놓으면 개들도 그 안으로 가지 말라는 뜻인 줄 안다.
아치에 걸어두었던 사피니아 화분들도 단풍나무 아래로 옮겼다. 사피니아 화분이 아니더라도 장마 때나 태풍 때는 행잉화분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혹은 강하게 부는 바람 때문에 걸려있던 화분들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뜨는 날엔 식물들이 해도 봐야 하기 때문에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엔 수시로 화분들을 옮기느라 바쁘다.
해가 뜨는 날엔 비 내리는 동안 놀지 못했던 개들과도 마당에서 놀아줘야 한다. 딸들은 이미 성인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케어가 필요한 반려 동물들이 많아서 난 여전히 아이 많은 엄마처럼 지낸다.
산속 집으로 이사 온 이후,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모든 날의 풍경에 가슴 설레며 살고 있다. 문득 예전에 공유(배우)가 '도깨비 김 신'역할로 나온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 나왔던 명대사가 생각난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