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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 May 21. 2023

04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삶을 견고하게 만든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난달에 건강검진으로 종합병원에 갔었다.

종합병원은 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수많은 환자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

검사를 마치고 정신없 병원을 빠져나와 병원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봄햇살을 즐기며 서있는데 뒤에서 노부부의 티격대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링거를 꽂고 환자복을 입은 할아버지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면서 할머니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병실에서 나와서 잠시 산책을 하시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싫은 기색 없이 할머니가 하라는 데로 몸을 움직여 준다.

할머니의 박하고 곰살맞지 않은 말투에서 아이러니하게 봄햇살의 따사로움과 다정함을 느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처음 접한 건 제주도의 한 작은 서점에서다.

그 서점의 이름은 '소심한 책방'이었다.


제주도 특유의 현무암 돌담길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서점.

아름다운 풍경 속 작은 서점 안에는 오밀조밀 적당량의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아담한 서점에서 보라색 겉표지에 흥미로운 제목의 책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보라색 끌리고 제목으로 한번 더 끌린 책.

부드러운 보라색의 표지와 제목으로부터 왠지 따스함이 느껴졌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도 아니고, 적자생론도 아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니. 이런 경쟁시대에.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나에게는 일단 끌리는 제목이었다. 제목부터 호감이 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한번 기회 되면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책으로 서평모임을 할 기회가 생겨 기꺼이 참여했다. 사람처럼 책도 인연이 있어야 서로 만나는 것 같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처음에는 잘 수긍이 가는 말은 아니었다. 다정함이란 사실 부드러운 이미지가 떠오르고 부드러움 속에는 약간의 약하다는 의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살아남는다라는 말에는 보다 강하고 똑똑하고 남을 밟고 이겨야 하는 냉정함이 느껴진다.

그런 살아남는다는 말 앞에 다정함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어울리지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현재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다. 여러 인류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것은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인 친화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힘이 세고 두뇌가 좋은 것보다 협력하고 소통하는 친화력이 좋은 종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자기 가축화'라는 가설이 나온다. 친화적인 종이 결국 늑대가 길들여진 개로 우리 곁에 살아남아 있는 것처럼 인간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가축화한 것이라고 한다.


"빙하시대에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늑대를 가축화했다고 가정하면 비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나올 뿐이다.

사람들은 친화적이고 가장 덜 호전적인 늑대만을 골라서 10여 세대 이상을 번식시켰어야 한다."(본문 중에서)


그러니 무조건 야생의 늑대를 길들여서 개로 남게 된 것이 아니라, 늑대 중에 친화력이 좋은 종이 스스로 가축화를 거쳐 우리 곁의 반려견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보노보'침팬지의 실험은 다정함과 친화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실험이다. 먹이를 자기만 먹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도와가면서 함께 먹는 보노보 침팬지.


결국 지능이 높은 것도 종을 번식하는 것도 친화력과 다정함이 더해져야 더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는 책이다.

물론 뒤에는 이 다정함의 속성 때문에 자기의 친밀함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대에겐 비인간화라는 잔인성이 나오기도 하는 이야기도 펼쳐져서 다정함이라는 속성의 반전되는 얘기도 나오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고독을 얘기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함께 하는 삶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진정한 행복은 주고받는 나눔 속에서 나온다.


그렇게 함께 하는 삶이 견고한 인생을 만든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라는 이 책의 시그니쳐 문구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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