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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 Jul 09. 2023

11 죽은 자로 하여금

부조리에 눈감는 사람들

죽은 자로 하여금, 편혜영 장편소설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조직 내부 비리를 겪는 무주와 이석이라는 두 인물의 팽팽한 긴장과 주인공 무주를 통한 심리적 갈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무주라는 인물을 통해 유혹과 양심 사이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무주는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상사의 지시에 른 불법을 저지른다.

그렇게 무주는 비리를 저지르고 회사에서 내몰린 사람이 된다.


“시험에 든다는 것. 그 말은 위기에 빠진다는 의미였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니며 그 말을 자주 들었다. 어른들은 곧잘 힘든 일을 겪지 않게 해 달라는 의미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고 기도했다.


위기에 처해 신을 저버리지 않게 해 달라는 간곡한 당부이거나 미혹한 스스로를 다짐하며 쓰는 말이었다. 성장한 후 무주는 교회에 나간 적이 없지만 누구를 향해서건 무턱대고 기도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미 시험에 든 이상 그런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p40)


이렇게 시험에 든 무주는 같이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를 덮어쓰고 대학병원에서 쫓겨난다.

곧 연락을 줄 테니 잠시 조용히 나가 있으라고 한 상사의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취직한 시골 마을인 이인시의 선도병원.

이인시는 기울어진 조선업으로 인구도 줄고 쇠약한 도시로 변해가는 도시다. 이 병원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덕망 높은 선배 이석을 만난다. 이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조무사로 취직해 이 병원에서 성실하게 일해온 직원이다.


이석은 무주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선배고, 무주 또한 회사생활에 정 붙이고 다니게 되던 참에 병원 사무장이 병원 내부의 비리를 밝히는 일을 맡긴다.


 병원의 물품 장부를 조사하던 중, 무주는 이석의 비리를 목격한다. 이석이 물품 가격을 올려 장부를 조작한 것이다. 고민 끝에 이석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익명 게시판에 고발을 하지만 그 글은 삭제되고 이석은 회사에서 갑자기 잘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무주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고 이석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차라리 무주가 그냥 관행에 따라 눈감아주고 모든 일을 묵인했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일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이도 유산되고, 아내에게도 버림받고, 동료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은 무주는 병원에서도 다른 보직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피폐해진 무주 앞에 이석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병원의 중요 자리로 다시 복직을 하고 무주는 바뀐 상황에 어리둥절한다.


“관행만큼 편하고 안전한 건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면 ‘관행’이 비난받을 것이었다.”(p75)

“관행은 운에 좌우되는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걸리지 않으면 행운이 쏟아지지만 일단 걸리면 모든 걸 내놓아야 했다.”(p77)


그런 관행들이 모두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무주는 방황하고 괴로워한다.

‘죽은 자로 하여금’이라는 소설 제목을 정의하는 대목이 이석의 말을 통해서 표현된다.


“영혼이 죽은 자는 내게 필요 없다. 불신자는 불신자에게 가고 믿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 그러니까 나를 따르는 건 믿는 자로 충분하다는 뜻이려나.”(p140)


사실 이석의 이 말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지만 소설 제목의 ‘죽은 자로 하여금’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무주의 상황에 처한 난처한 입장들. 해명해야 할 과제와 미묘한 주위사람들과의 얽힌 감정들. 윤리적 양심과 정의를 위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라면 무주와 같은 입장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진정한 용기란 어떤 것일까.


소설처럼 비리까지는 아니어도

불의에 타협까지는 아니더라도,

관행에 물들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넘어가는 식의 생각들이 얼마나 생활 속에 침투해 있는지.


무겁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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