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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 Aug 13. 2023

14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생각아, 나중에 얘기하자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스웨덴 승려다. 26세에 이미 성공가도를 달려 임원으로 지목되었지만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다. 사회적으로 보면 누구보다 빨리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앞길이 탄탄했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행복하지가 않았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 밀림의 숲 속 사원으로 가서  17년 동안 수행을 한다. '나티코'는 '지혜가 자라는 사람'이라는 뜻의 법명이다.

그리고 46살에 엄격한 수행 생활을 마치고, 사원을 떠나 환속 후에는 결혼도 하고,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도중에 루게릭 병을 얻게 된다.

2022년 1월, 마지막 순간까지 울림 있는 가르침을 주고 홀연히 이 세상과 작별을 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출세를 위해 평생을 애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배우고 연구하기 위해 영혼을 갈아넣기도 한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걷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건지 그러다가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저자는 사회적 출세로 따지자면 누구나 부러워할 속도로 쭉쭉 올라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국, 사회적 성공이 꼭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고요함을 찾기 위해 떠난 수행, 17년 동안 수행 정진 끝에 저자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결국,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지, 내가 곧 생각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에 사로 잡힐 때마다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우리 마음은 지칠 줄 모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결국 또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꾸짖거나 이번에는 어느 정도 해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또다시 흐름을 놓쳤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생각을 내려놓고 원래 집중하려던 대상으로 차분히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자기를 비난하지 말고 자기 연민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보듬어주고 다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힘들 때면 나만 이런 문제에 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한 외로움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현명한 선택을 놓치기도 한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를 갈라놓은 것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을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는 고립감에서 빠져나와, 누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공통점을 나누면서 더 많은 위안과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 서로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보듬어 주는 과정에서 돈돈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통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각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어떤 양상을 취할지도 통제하지 못하지요. 다만, 어떤 생각은 더 오래 품으며 고취할 수 있고, 어떤 생각에는 최대한 작은 공간만을 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어찌 생각을 안 하고 살 수가 있을까. 생각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생각의 힘으로 거대 문명을 이루었으니까.


 불안감과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생각을 조절하는 것은 힘들더라도, 그런 생각이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믿을지 말지를 선택하는 건 연습을 통해서 가능하다.


저자는 한 스승을 통해 마법의 주문을 배우고 소개한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코칭 수업에서 마스터 코치가 한 말씀이 생각난다. 그분은 "나의 생각은 언제나 틀렸다."라는 문구를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아 놓고 수시로 본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밀려오는 생각에 속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가 있다.

이 문구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보다 더 강력하다.


그래도 "생각이 전부 틀릴 수가 있나요, 가끔은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는 학생에 질문에 "역시 나의 생각은 또 틀렸네요."라고 호탕한 웃음으로 답하는 마스터 코치의 한 마디에 '아하'하는 작은 인식의 일깨움을 일으키게 한다. 고도의 가르침이다.  


책에서는 저자의 아버지가 안락사하는 순간을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므로 스위스 어느 병원으로 가서 아버지의 뜻을 이뤄드린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음악과 스피커까지 챙겨간다. 마치 가족 여행을 가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대화를 나누고 농담도 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또 울며 이별의 시간을 받아들인다. 주사를 꽂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 스스로 밸브를 열게 한다.

의사는 아버지가 떠나기까지 30초에서 40초가 걸리는데 2분이 지나자 의사에게 "이봐요, 링거에 엉뚱한 걸 넣진 않았겠죠?" 하는 농담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 장면이 인상 깊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유머를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면 장난기와 유쾌함, 익살스러움은 사라지고 행동거지는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집니다."


유머와 해학. 앞으로의 나의 삶 속에서도, 나의 말과 글에서도 그것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솔직하게 승려생활의 어려움들을 써 내려갔다.

나는 이렇게 해서 깨달았고, 깨닫기 위해서 어떻게 하라는 식의 지침이 아니다.

명상이 생소하고 잘 안 됐던 점, 환속 후에는 17년간의 수행이 무색할 정도로 불안과 우울증으로 허우적대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던 체험들, 그리고 사랑과 결혼, 아버지의 죽음, 자신의 불치병 등

누구보다 인간적인 정신 상태를 겪고, 사랑을 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는, 따뜻하고 다정한 인간적인 책이다.

삶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당연시 여기지 말고 감사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거라는 스웨덴 승려의 마지막 가르침을 되새겨다.


"내면의 도덕적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 아는 사람의 삶은 더 쉽고 더 자유롭습니다. 저는 그 증거를 곧잘 목격합니다. 이 우주는 마구잡이로 흘러가는 무심한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존재는 공명합니다. 우주는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의도에 반응합니다. 우리가 내보낸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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