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선형 계단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다다를 수 있는 길
새해가 되면 각종 운동시설에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헬스장, 피트니스 센터, 요가원 등 새해의 굳은 다짐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시작하죠. 그러나 그 결심도 시간이 흐르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춥니다. 계획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저도 늘 새해에 빼곡히 계획을 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야심 차게 세운 계획도 연말이 되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하는 게 다반사였죠.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고 합리화하면서요.
업무에 치이고, 스트레스는 이면지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잦은 회식으로 몸이 지치니 작심삼일은 그냥 예삿일이었습니다. 뭘 제대로 성과를 이룬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과의 약속은 그토록 쉽게 버릴 수 있다니. 제일 지키기 힘든 약속은 운동과 아침에 글쓰기였습니다. 일기는 밤에 몇 줄 쓰는 건 쉽지만 맑은 정신으로 새벽에 글쓰기는 일주일을 넘기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몇 년 전에 건강에 신호가 오면서 삶을 다시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건강 하나만은 자신 있었는데 몇 번의 수술 후 후유증을 겪으면서 체력은 바닥으로 꼬꾸라졌습니다. 퇴근하고 오면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 있고, 선잠을 자기 일쑤였어요. 그 상태 그대로 출근하고 퇴근 후 다시 움직이지 않고 쳐져 있고,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니 과체중에 체지방이 점점 늘어나고 전반적인 건강 수치들이 엉망진창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래선 진짜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동안의 먹는 것, 해 온 것, 생각해 온 것이 지금의 내 상태를 만들었다면 그 모든 걸 바꿔야 다른 내가 될 것 같았어요.
일단 퇴근하고 와서 저녁 식사 후 곧장 누워있다가 잠드는 습관을 고치기 위하여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운동화 끈을 매자" 였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냥 현관에서 운동화를 한번 신고 끈을 매자. 운동화를 신으면 나가게 된다. 재활용 쓰레기라도 버리자. 아파트 화단에 새로 핀 꽃들이라도 보고 오자.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한 달 후에는 두 바퀴를 돌고. 매일 40분을 빠짐없이 걸었어요. 금요일 퇴근 후엔 바닷가까지 긴 산책을 하고 토요일엔 산에 올라가 자연을 감상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꾸준히 한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살은 단 0.1킬로도 안 빠졌어요. 그래서 식단을 병행하고 또 운동했어요.
지루함과 단순함, 변화 없음을 그냥 받아들이면서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를 지속했습니다. 6개월쯤 지났을까. 아주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옷 입을 때 좀 여유가 있고, 자세가 바르게 잡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느끼고 그다음엔 남이 알아본다고 하죠. 1년 동안 어느 정도의 체중감량이 되어, 건강검진 결과에는 모든 수치가 정상이 되고, 체성분 점수도 제법 많이 끌어올렸습니다. 마치 열심히 공부한 후에 오른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어요.
“자신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일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작은 습관 하나하나는 각각의 결과를 얻게 해 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신뢰하게 만들어 준다."
- 제임스 클리어 (2019),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비즈니스북스 -
성장은 폭이 넓고 매우 원만한 나선형 계단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지루함과 단순함과 변화 없음을 견디고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 평지를 걸어가는 것 같지만 어느새 오르고 있는 것이죠. 때론 내려가는 듯한 착시현상도 나타나요. 이 작은 성취감에 이어서 매해 새로운 계획을 세워봅니다. 또 가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또 뭔가 건지는 게 있겠죠?
코칭 실습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짜고 치는 듯한 고스톱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역할극을 하는 게 너무 어색했고요. 반복되는 실습을 하면서 재미있고 신기할 때도 있었고, 내가 이거 뭐 하는 건가 하고 지치기도 하고 발전 없는 나의 모습에 좌절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비슷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코칭 연습을 해봅니다.
오늘도 평지처럼 보이는 커다란 나선형 계단을 묵묵히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