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화해했다.
[오늘 왜 울었나요?] #4. 편지 쓰다 울었어
나에게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연극을 올리기도 했고,
또 그 친구에게 자주, 못된 말 보다 더 질 나쁜 침묵을 건네기도 했다.
그 친구와는 기숙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열일곱의 아이들이 그야말로 혼돈 속에 던져져 봄을 보내던 그곳에서 나는 매일이 어려웠다.
그래도 새로 친구들을 사귀는 일은 재미있었다.
그 친구와는 접점이 없어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다.
달아오른 새 학기의 분위가 중간고사로 한풀 꺾이던 4월 6일은 내 생일이었다.
자리를 비우고 돌아올 때마다 하나씩 간식거리가 올려져 있던 독서실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기뻐했다.
밤 11시 50분. 소등 직전 기숙사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그 친구가 거기 서있었다. 그 친구는 가나 초콜릿과 편지를 건네고는 종종 밝은 복도를 건너 방으로 돌아갔다. 편지를 열어보니 내 캐리커쳐와 편지가 적혀있었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나를 멀리서 보고 있었다는 말, 친해지고 싶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나는 아직 그 편지와 가나 초콜릿 종이 포장지를 버리지 않았다. 그 밤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11년이 흘러 나와 그 친구는 28살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우습게도 우리는 우리의 스물일곱 번째 크리스마스날 싸웠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예약한 미술관 로비에서 말이다.
전조 증상은 예전부터 있었다.
서로 꾹꾹 눌러왔던 것이다.
무서웠다.
열일곱에 만나 서로 닮은 구석을 알아보며 친해졌었는데
이십 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가는 우리는 점점 더 달라지기만 했다.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싸울까 봐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싸우는 게 무섭다기보다는 그 친구와 의견이 다를 때 자동적으로 입게 되는 상처가 두려웠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와 나를 잘 분리하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는 화해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미술관 로비에 앉아서 꾹꾹 눈물을 닦아가며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건 부끄럽지 않았는데, 친구가 우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니 부끄러웠다.
화해를 하고 전시를 잘 관람하고, 오므라이스와 돈가스를 먹으면서도 계속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예감했다. 우리의 관계가 예전과 같아질 수 없음을.
불안함과 슬픔은 거리감과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자책하는 마음과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올봄에 친구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책하는 마음, 그리움, 불안과 슬픔을 모두 날려주는 사실이었다.
편지에 그 깨달음을 적어 친구에게 보냈다.
'너랑 싸우고, 이제 우리 관계가 예전과 같아지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웠어, 내가 왜 그랬지. 후회도 되었고. 그런데 네가 멀리 떠나고 나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 새로운 시작을 하는 너를 응원하고 싶은 나를 보면서, 멀리 떠난 너를 그리워하는 나를 보면서, 그리고 멀리서도 내 안부를 물어주는 너를 보면서, 기쁜 일을 나에게 먼저 전해주는 너를 보면서, 떨어져서도 휴대폰이 뜨끈하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를 보면서. 우리 관계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다른 사람이 되어 가겠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로부터 계속 멀어질 거야. 그래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어.'
(이미 편지를 보내버려 원본이 없기에, 기억을 되살려+조금의 각색을 더해 재구성했습니다.)
오늘 친구는 편지를 받았다.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친구가 카톡을 보내 팝업창에 뜬 메시지들을 조금 읽었다.
전문을 읽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부드럽게 엉켜 조금 울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