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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그 Oct 04. 2021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내가 너무 미울 때

[울음 탐구 에세이 : 오늘 왜 울었나요?] #1. 노래 듣고 울었어

야심 차게 [울음 탐구 에세이 '오늘 왜 울었나요?'를 시작하며] 라는 글을 올린 지 한 달 만에 드디어 두 번째 글을 시작해봅니다. 사실 첫 글을 올린 지 한 달이나 지난 줄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울 일이 없어서 이렇게 늦었나.. 싶은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울 일이 정말 많아서, 어떤 울음을 먼저 기록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요. 또 그 감정들을 모두 소화해내느라 진이 빠졌던 것도 있어요. 오늘은 제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왜 뜬금없이 고등학교 얘기냐구요? 중요한 질문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제가 '잘 우는 인간'이 된 것에 고등학교 시절이 정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제가 잘 우는 게 여려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잘 우는 이유를 감정적으로 섬세하고 활발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타고난 것과 어린 시절의 첫 번째 기억들의 영향이 크겠죠. 이걸 5할 정도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나머지 5할은 자아를 가지게 된 후의 경험들에 의해서 채워졌을 거예요. 그 5할 중의 4할 정도를 고등학교 시절에 겪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이 어떻게 저를 감정적으로 섬세하고 활발하게 만들었는지, 하나씩 이야기보따리를 한번 풀어볼게요.


금요일 저녁과 일요일 저녁의 낙차

열일곱, 저는 경북의 한 산골 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육지의 섬이라고도 불리던 곳이었죠. 300명이 채 되지 않는 전교생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어요. 어느 날 좋던 가을날, 엄마 아빠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서 차에 올라탔는데 3시간이 지나도록 식당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마지막 한 시간은 길이 온통 꼬불꼬불했던 터라 머리가 지끈거렸죠. 그렇게 달려 도착했던 곳은 한우를 파는 식당이 아니라, 우리 학교였어요. 알고 보니 입학설명회를 온 것이었죠. 교문의 경사로를 따라 핀 코스모스를 보는데 멀미로 소란스러웠던 속과 쑤시던 머리가 씻은 듯이 정말, 씻은 듯이 편안해졌어요. 이 풍경과 함께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죠. 입학설명회도 멋졌어요. 특히 난타부 공연이 엄청났죠. 자기 북을 치다가 옆 사람 북으로 옮겨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맨 끝에 선 언니 옆에 북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언니는 마치 북이 있는 것처럼 허공을 두드렸어요. 그 장면을 보는데 심장이 두근두근거렸고요, 입학설명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난타부에 들어가야지 다짐했답니다. (실제로 입학 후에 난타부에 들어갔고, 그 언니에게 난타를 배웠어요. 저는 운동 신경이 없는 것은 물론 동작을 외우는 데 조금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었고, 자습시간에 난타채 대신 플러스펜으로 박자를 연습하곤 했어요. 가끔 울었구요. 이건 다음에 길게 다시 얘기해볼게요.) 설명회가 끝나고 학교 시설을 둘러보는 시간에 교실을 구경했어요. 그리고 저는 입학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의자의 색 때문이었어요. 바랜 나무색 의자만 봐왔던 저에게 하늘빛과 회백빛이 섞인 의자는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가을 햇빛이 잔잔하게 내리던 그 교실의 풍경이 지금도 본을 뜬 듯 마음에 남아있어요.

그렇게 한눈에 반해놓고도 사실 입학을 오래 고민했어요. 고등학생 때도 중학생, 초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동네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며 똑같은 친구들과 놀며 지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 학교에 간다는 건 그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열여섯의 저는 그런 일상을 잃어가면서까지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걸 믿지 않았어요. 그렇게 저는 동네에 있는, 친구들이 많이 진학하는 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고, 부모님은 그렇게 하라며 고개를 끄덕여주셨지요. 그게 끝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며칠 후 엄마가 저를 조용히 작은 방으로 부르셨어요. 그리고 다시 기숙학교 진학을 권하셨죠. 엄마는 그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으셨어요. 하지만 저는 바로 설득되었답니다.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이때까지 민경이한테 뭐 하라고 한 적 없지, 그런데 그 학교에 가는 건 정말 권하고 싶어'

엄마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거면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동시에 이유가 없어도 괜찮겠다 싶었죠. 입학 설명회 때 마음속에 넣어두었던 코스모스, 난타부 공연, 의자와 교실의 풍경이 기다렸다는 듯 줄줄 흘러나왔고, 저는 그렇게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몇 번의 미화를 거친 지금에도 그곳에서 느꼈던 서러움과 외로움 막막함이 작은 흉터처럼 남아있답니다. 가령 이런 거였어요. 저는 같은 학교에서 온 친구가 없었어요, 입학 전 같은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미리 서로를 만나기도 했는데 저는 그럴 기회가 없었고요. 그래서 한동안 아침밥을 혼자 먹거나, 어색한 친구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식판을 비웠어요. 한 날은 아침으로 고등어가 나왔는데 너무 비린 거예요. 그래도 먹어야지 하면서 먹는데 바르지 않기도 참 어려울 만큼 큰 가시를 꽉 씹어버려 입 안에 피가 났죠. 화장실에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빠르게 비워져 가는 친구들의 식판도 신경 쓰이고 혹여 비위가 약한 친구가 듣고는 싫어할까 봐 피와 밥을 같이 삼켰어요.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와 조금 울었답니다. 시원하게 울고 싶었는데 방에 저 혼자 있는 게 아니라서 꾹꾹 눌러 담았어요. 서러움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밥을 먹는 시간에 자주 찾아왔어요. 급식이 맛없으면 서럽고 또 맛있으면 그것대로 또 서러웠어요. 그래서 종종 밥을 먹으러 줄을 서 있다가 뛰쳐나가 운동장을 돌며 운 날이 많았답니다. 식사 시간 운동장은 텅텅 비어서 아무도 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교실에서는 모두 보였을 테죠. 그런데 그렇게 운동장을 돌며 우는 풍경이 드물지는 않았기에(모두 비슷한 서러움을 가지고 있었겠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울 수 있었어요.


휴대폰을 쓸 수 없었던 그곳에는 다섯 대의 공중전화가 있었는데,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그 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곤 했어요. 하지만 저는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줄이 꽤나 길었거니와 가족들 목소리를 들으면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어요. 당시에는 마음이 약해지는 기분이 제법 위태롭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참 귀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금요일이 있는 주는 월요일부터 기분이 들뜨고, 금요일에는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흥분 상태가 되었죠. 가족들은 항상 저를 요양이 필요한 선물처럼 맞아주었어요. 2박 3일 내내 맛있는 음식들을 빈틈없이 먹고, 실컷 자고 또 텔레비전을 보았죠. 그리고 나서 돌아가는 일요일이 오면 버스를 타기 전부터 속이 울렁거렸어요. 다섯 시쯤 버스에 올라타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해가 다 져있었는데요. 산으로 둘러싸인 깜깜한 국도를 달리다 정말 언제나 갑작스럽게 학교 건물이 보였어요. 온통 까만 곳에서 홀로 환하게 빛나는 학교 건물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나 무인도의 모닥불처럼 황홀한 구석이 있었죠. 하지만 그 풍경에 속하고 싶지 않았어요. 배가 불러서 못 먹었던 음식들과 짧게 만났던 친구들, 배웅해주시던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금세 우울한 기분이 되었어요. 월요일부터 서서히 쌓아 올린 마음들이 한 번에 우르르 무너지는 기분. 그 낙차를 한 달에 한 번씩 겪었어요. 그리고 그 낙차에 적응하게 되었어요. 그래 나는 감정 변화가 격한 사람이지, 그래서 행복한 순간에 쉬이 도달하지만 바닥을 찍는 것도 금방이지. 그것은 마음의 일이지만 항상 물리적인 감각이 따라왔어요. 그래서 내가 마음이 있구나, 그 공간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올라가기도 하는구나 자주 생각했죠.


나는 나와 나란히 서서 운동장을 걸었다

그 시절, 기숙사에는 5명의 룸메이트들이 있었고, 교실에는 반 친구들이 있었고, 독서실에는 독서실 짝지가 있었고 또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을 함께하던 단짝 친구가 있었어요. 한 마디로 혼자 있을 시간이 없었답니다. 외로울 새 없이 곁을 꽉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복이었지만, 그때의 저는 심야 자습이 끝나고 가로등도 거의 꺼진 캄캄한 운동장을 몇 바퀴 혼자 돌곤 했었어요. 혹시 먼저 운동장을 돌고 있는 사람이 있진 않은지 조심스레 살피며 트랙에 발을 디밀고, 천천히 곡선을 그리며 마음이 단정해질 때까지 걷곤 했죠. 그곳의 밤은 저에게는 정화장치 같은 것이었어요. 여과 없이 받아들인 하루 동안의 감정과 생각들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시간이었죠. 낮보다 화려하고 밝은 도시의 밤과 다르게 그곳에는 진짜 밤이 있었어요. 주변에 빛나는 것이라곤 별과 기숙사 창이 전부고, 귀를 스치는 소리 또한 바스락 거리는 점퍼와 타박거리는 슬리퍼 소리, 잔잔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전부였죠. 눈과 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이 최소화되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냄새가 진하게 다가왔어요. 잔디 냄새, 나무 냄새, 밤공기 냄새. 그 냄새를 코로도 들이쉬어 보고, 입으로도 들이쉬어보고 동시에 해보려다 컹 소리를 내기도 하고, 그렇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엉킨 생각과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걸었지만, 가만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어요. '그때 왜 속상했지?', '그 친구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오늘 진짜 행복했지?', '내일 쪽지시험 준비 덜했는데 어쩌지', '10년 뒤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그러면 스스로에게 가장 다정한 친구가 되어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해보게 되었어요. '속상한 게 잘못된 건 아니야',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내일 친구한테 물어보자', '축하해!', '괜찮아, 안 죽어',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반짝반짝하지 않을까?' 내 감정과 생각을 덮어두는 일 없이 항상 들여다보려는 습관은 그 시절, 매일 밤 운동장을 도는 것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너와 나를 몰라서 한없이 깊게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

여러분은 여러분의 열일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저는 저의 열일곱을 '너와 나를 몰랐던' 시간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몰랐던' 시간으로요. 제가 그 시기에 대해 썼던 글의 일부를 보여드리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아요.


"열일곱 살이었다. 나의 세계가 조금씩 견고해지고 있었지만 타인의 세계에 상처 입을 만큼 단단하지 않았던 때가. 타인을 정의 내리지 않았고, 내릴 필요도 없었을 때,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조그만 마음들을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리면 곡선들이 한 치에 오차도 없이 선명하게 겹친다고 믿었을 때. 너를 좋아하는 일이 나를 좋아하는 일이고, 네가 나를 좋아하는 일이 너를 좋아하는 일이었을 때. 까만 운동장을 함께 돌며 엉엉 내지르던 울음소리가 하나로 들렸을 때*, 마흔여덟 시간을 내리 함께 있고도 빛나는 웃음을 건넬 수 있었을 때. 네 일기에 항상 내가 있고 네가 없는 나의 일기는 일기가 되지 못했을 때, 나란히 걷지 않는 법을 잊어버려 마주 걸어오는 너의 눈을 바라보곤 그 자리에서 무너져 버렸을 때.

 내게 그곳에서의 시간은 이렇게 기억된다. 좋아하고 있다는 인식도 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정을 모르면서 그것을 두 손 가득 쥐고 있었던 시간. 너와 나를 몰라서 한없이 깊게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

(*권나무, <어릴 때> 가사_ ‘그 맘이 하나로 보였을 때’ 오마주)


대학 시절,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저)을 읽으며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이 만들어지고 처음 자란 곳, 그곳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또 다른 포궁'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포궁에서의 시간이 우리가 타인에 대해 끊임없이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태아 시절 우리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우리의 욕망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요. 엄마와 한 몸처럼 존재함으로써 누군가 내 욕망을 욕망해주었기 때문이죠. 세상에 태어나고 얼마 간도 이것의 연장선이었을 거예요. 내가 울면, 나의 보호자들이 나의 마음을 열심히 읽어서 밥을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안아주거나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식의 울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되죠. 그걸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욕망은 스스로 책임지는 걸 우리 모두는 연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유토피아와 같은 곳에서의 기억이 무의식 깊은 곳에 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세계를 복원해줄 '한 사람'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마음이 너무 커지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는 제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한답니다.

같은 일에 웃고, 같은 일에 울어줄 친구들이 있었고, 나를 꾸며내거나 숨기지 않아도 사랑받고 또 전하는 사랑이 오해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그곳은 저에게 흠 없는 유토피아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문제는 이 세계가 20살이 되면서 감쪽 같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고요. 쉬이 우울감에 빠졌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또는 받아들이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려서 자주 울게 되었답니다.


행복했던 기억이 족쇄가 될 때

과거를 곱씹는 것, '반추'는 우울감과 친한 사고 패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류의 생각은 똑같은 실수를 하는 걸 막아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방점은 '그런 선택'을 한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공개 처형하는 일에 찍히지요. 그렇다면 행복했던 일을 곱씹는 것은 어떨까요? 이 또한 내일을 위한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행복했던 그때의 나와 그렇지 않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왜 너는 그것을 다 잃어버렸냐며 나를 비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요.

삶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고르라면 역시 고등학교에서의 시간을 꼽고 싶어요. 조용한 산골 기숙학교에서 보낸 3년. 내가 나인 것이 대체로 끔찍하게 좋았던 때. 내가 싫어질 때도 친구들과 운동장 한 바퀴 돌면 씻은 듯 말간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때였죠. (지금도 반추를 하고 있네요) 사실은 그때도 두려웠어요.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얘들은 뭘 보고 나를 좋아하는 걸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럼에도 그런 걱정을 그냥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로 주고받는 사랑에 틈이 없었던 때였어요. 대학생이 되고 느낀 우울감의 70%는 고등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왔었어요. 그때와 달리 왜 지금의 너는 행복하지 않냐며 나에게 따졌지요.

이제 그 때로부터 떠나온 지도 8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구월에는 6년 만에 그 산골을 찾아가 친구들을 만났는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이 공간에 지우고 있었던 환상들을 조금 걷어낼 수 있었어요. 더불어 '그때의 나'에 대한 신격화도 함께요. 그러고 나니 균형이 조금 잡히는 기분이었어요. 마음과 몸이 조금 더 '오늘'에 가까워진 기분. 나랑 조금 친해진 기분.

소중한 것이 생기면 곧잘 집착하곤 합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기와 그때의 나에 대해서도 그랬고 그래서 모두 잊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랬는데 조금 거리가 생기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에요. 이제 부러 잊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한 기억에 고여있고 싶어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 행복하지 않은 지금의 내가 너무 미울 때. 듣는 노래가 있어요. 가수 이상은 님의 <비밀의 화원>이라는 노래예요. 가수 아이유 님이 리메이크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던 노래죠. 폴짝폴짝 뛰는 느낌이 드는 리듬과 초록의 풍경이 떠오르는 싱그러운 멜로디, 거기에 아기자기하고 향긋한 가사가 어우러진 노래예요. 그 노래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에요.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 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정확하게 위로받는 기분이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찡해지는 부분이에요. 여러분도 혹시 어떤 행복한 기억에 묶여있는 기분이 든다면, 그 기억 속의 여러분이 너무 그립고 지금의 내가 초라해 보인다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제의 일은 어제에 두고 오늘의 나와 조금 더 친해지실 수 있길 바랍니다.


사실 이런 글을 썼지만 어제의 일들을 잊을 용기는 아직 없어요. 하지만 어제의 일을 어제에 둘 수 있게 되면, 그 일들을 잊어야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잊기에는 너무 다정하고 아름다운 기억들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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