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건너며, 나는 무엇을 만들고 있었을까

연구년의 끝에서, 성과보다 구조를 돌아보다

by Sunny Sea

2025년은 내 인생에서 조금 특별한 해였다.


연구년이라는 이름의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그 시간을 '쉬는 해'로 부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한꺼번에 말을 걸어왔고, 나는 그 질문들에 응답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연구보고서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보고서로만 남겨야 할까?

교실에서는 어떻게 살아 움직일까?

내가 정년을 앞두고 정말 남기고 싶은 건 무엇일까?


그때부터였다. 일은 눈덩이처럼 늘어났지만, 방향만큼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사람으로

ChatGPT Image 2025년 12월 31일 오전 12_51_50.png


올해 내가 한 일들을 나열하면 꽤 그럴듯하다.


그림동화, 영어 명언 컬러링북, 교사용 안내서, 연수 자료, 질문지, 챗봇, QR 코드…. 숫자로만 보면 제법 성실하게 뭔가를 만들어낸 한 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많이 만들고 싶어서' 만들지 않았다.


나는 계속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건 혼자 잘해낸 결과일까, 아니면 누군가 이어서 쓸 수 있는 구조일까?


그래서 하나를 만들면 반드시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동화는 활동지로 이어지고, 활동지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질문은 다시 수업과 기록으로 순환하도록 설계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았다.


성과는 혼자 완성하지만, 구조는 타인이 완성한다는 것을.


나 혼자 잘 쓴 자료는 금방 낡는다. 하지만 누군가 가져다 쓰고, 조금 바꾸고, 다시 나눌 수 있는 틀을 만들면 그건 시간을 견딘다. 나는 올해 그 '견디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AI와 함께 일하면서 더 분명해진 것들


올해 나는 AI와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이디어를 묻고, 문장을 고치고, 구조를 다시 짜고, 때로는 "이건 너무 거창하지 않아?"라고 되물으며 함께 고민했다.


흥미로운 건, AI를 쓸수록 내가 더 또렷해졌다는 점이다.


AI는 대신 생각해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생각을 비춰주는 거울 같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명확히 알지 못하면 AI도 흔들렸다. 정확히 요청할수록, 더 정확한 답이 돌아왔다.


나는 AI에게 늘 같은 기준을 들이밀었다.


교실에서 바로 쓸 수 있을까?

교사가 인쇄해서 꺼내 쓸 수 있을까?

아이에게 너무 어렵지 않을까?


그 질문 덕분에, 나는 37년 차 교사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나는 여전히 '교육자'로 남아 있고 싶었다.


확장보다 정렬을 선택한 한 해


올해 나는 새로운 관계를 넓히기보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천천히 설명하는 데 시간을 더 썼다. 내 안의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흩어진 조각들을 맞춰가는 작업이었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차분하게 했다.


이제는 더 잘해 보이기보다, 덜 흔들리며 남기고 싶어졌다. 화려한 성과보다 단단한 뿌리를, 빠른 확장보다 깊은 뿌리내림을 선택했다.


그래서 올해의 키워드를 굳이 하나로 줄인다면, 나는 '확장' 대신 '정렬'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다.

흩어진 것들을 모으고, 쌓인 것들을 정돈하고, 만들어진 것들이 서로 손을 잡게 하는 일. 그것이 2025년 내가 가장 공들인 작업이었다.


2026년을 향해, 더 적게 만들고 더 오래 남기기


내년에는 아마 더 많은 요청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강의, 연수, 출판, 협업…. 게다가 학교와 가정에서 해야할 역할이 늘어날 예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2026년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새로운 것을 더 만들기보다, 이미 만든 것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다듬는 것.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실제로 쓰이고, 변형되고, 다시 나눠지는 것.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


"이거 바로 써봤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덕분에 수업이 달라졌어요."


그것이면 충분하다.


성과가 아닌, 성과가 쌓이도록 길을 만든 사람


2025년의 나는 성과를 쌓은 사람이기보다, 성과가 쌓이도록 길을 만든 사람이었다.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수업의 힌트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용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작은 확신이 된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히 잘 건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25년,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어느 해보다 차분했던 이 시간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성과는 혼자 완성되지만,

구조는 타인이 이어서 완성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결과보다 길을 남긴다.”

— 이선, 정년을 앞둔 교사

— Sun Lee, An Educator Nearing Retirement





이선

37년 차 교사, 2025 연구년 교사

CHaT 학습법 창안자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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