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독서록

-브런치 라이브독서

by Sunny Sea


[브런치 독서노트] 읽은 책 - 죽음에 이르는 병 by Sunny Sea https://brunch.co.kr/@sunnysea/note/5


예상치 못한 8시간 독서 기록


어제 밤, 잠들기 전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으려고 브런치 라이브독서앱을 켜놓았다. 그런데 잠이 들면서 앱을 끄는 것을 깜빡했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앱이 밤새 돌아가 8시간이 넘는 독서 시간이 기록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브런치 작가 모임 카톡방에 인증하러 들어가니, 작가님들이 각자의 책을 읽으며 남긴 인증글들이 쌓여 있었다.



바쁜 하루 속의 독서


낮에는 지식샘터 강의를 하고,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하러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 교감 선생님과 퇴근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에는 수요예배에 다녀왔다. 내일(금요일) 사회복지 현장실습 현장에서 초등 예비 4학년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하기로 해서 준비물을 챙기다 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책 몇 줄만 읽고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정이 되기 전에 잠든 드문 케이스의 날이 되었다.



절망에 대한 철학적 탐구


이 책은 때로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절망'에 대해 굉장히 심오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기에 이렇게, 저렇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 노력하는 키르케고르의 중심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며 읽었다. 사실 9쪽부터 46쪽까지 어제 하루 만에 다 읽은 것은 아니다. 그동안 틈틈이 몇 쪽씩 읽어온 것인데,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 결코 아니다.


키르케고르가 설명하는 '절망'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듯 말 듯하다. 어렵다. 그런데 그가 무엇을 절망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지는 대충 감이 잡히기도 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절망과 죽음


기독교적 입장에서 절망과 죽음은 다시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나라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이러한 절망과 죽음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절망과 죽음이 아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절망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떤 고통과 절망의 상태가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은데 죽을 수도 없는 현실을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막막한 상태 말이다.


보통 이러한 가운데 있을 때, 자신의 절망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지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그 절망은 끝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직 제1장까지는 작가가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절망에 대한 정의만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절망의 역설


절망은 고통스럽지만, 바닥을 쳐본 사람은 아주 작은 빛도 감지해낼 수 있기에 다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의 깊이를 경험한 자만이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절망의 심연을 겪은 사람만이 구원의 손길을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절망의 의미를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읽어나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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