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반에 온다더니 7시도 안 되어 도착한 이사센터 작업팀. 청소 때문에 10시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요청에 인부 한 명을 더 추가해 일찍 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실내 작업팀 남자 3명, 여자 1명, 그리고 고가 사다리 지게차 담당 1명까지 총 5명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척척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총책임자도 와서 6명이 되었다. 이 속도라면 두 시간도 안 걸릴 것 같았다.
이미 큼지막한 워시타워나 안마기 등은 다 이동시켜놓은 상태였고, 침대, 책상, 화장대, 김치냉장고 등 큼직한 가구 몇 개도 폐기물차에 실려 보낸 뒤였다. 어제 밤까지도 계속 버리고 처분하고 또 버리면서 정리해놓았기에 짐의 양은 많이 줄어 있었다.
이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다. 특히 37년간 모아온 교무수첩과 졸업앨범. 그 양과 무게가 장난이 아니어서 "이제는 정말 버렸으면" 하는 남편의 뜻을 따라 대폭 짐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vFlat이었다.
늘 사용해오던 앱이지만, 앨범의 각 페이지를 하나하나 저장해두고 싶었다. 앨범 커버부터 내지까지,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남편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 그는,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졸업앨범이 엄청 무겁다며 계속 버리라고 했지만 끝내 버리지 못했던 내가, 그렇게라도 해결해 짐을 줄이기로 마음먹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의미였으리라.
교무수첩은 시간이 없어 부피가 큰 것들을 우선으로 찍었다. PDF 파일로 변환할 수도 있고, 이미지 파일로 저장할 수도 있고, OCR 기능도 지원되는데 그 기능은 유료였던 것 같다. 유료 구독을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너무 잘 사용하고 있어서, 아무래도 조만간 유료 구독을 할 것 같다.
남편이 집 앞 편의점 CU에서 인부들을 위한 따뜻한 음료를 사왔다.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여러 가지를 골라왔는데, 대추 쌍화차가 제일 인기였다. 나는 인부들이 고르고 남은 커피와 허니 유자차 중에서 허니 유자차를 선택해 마셨다. 이사하는 날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이 주는 작은 위로.
며칠 있으면 딸아이도 우리 이사 가는 집 옆 동으로 이사 온다. 4월 출산 예정인 딸의 출산과 양육을 옆에서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 두 집이 나란히 거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순조롭게 결혼하고, 순조롭게 임신하고, 이제 출산을 앞둔 딸이 대견스럽고 고맙기만 하다. 나보다 남편이 더 자상하고 따뜻해서, 벌써부터 올 스탠바이 상태로 온갖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시부모님에게서 받았던 그 많은 도움을, 이제는 내리사랑으로 갚고자 한다. 2남 5녀 중 한 사람으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기대하는 딸들이 내가 아니어도 엄마를 충분히 수고하게 만들 것이기에, 자상하고 사랑 많으신 시부모님을 만난 것은 나에게나 나의 자녀에게나 정말 행운이었다.
나의 딸과 사위에게, 그리고 곧 만날 손주에게,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따뜻한 손길로 기억되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로.
이삿짐을 싸는 인부들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버린 것은 단지 오래된 물건들이 아니라, 한 시대였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딸의 새 생명과 함께 시작될, 우리 가족의 또 다른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