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직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일하는 동안 소홀했던 내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지역에서 같은 질환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동료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째를 아기띠로 메고 약속장소를 나섰다. 그리고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말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눈물이 나 제대로 말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동료 엄마들도 많은 눈물을 흘리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괜히 힘내는 엄마들 앞에서 징징대고 있는 꼴이었다. 첫 만남에 나도 저랬지, 오랜만에 운다던 언니들의 말에 내가 괜히 울어서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정말 미안했다. 지금은 나도 꽤 단련이 되었는지 울지않고 말할 수 있다. 아이의 질환과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말하게 되었다. 사실 그 땐 일하느라 애써 잊고 있다가 처음으로 아픈 아이의 상태를 처음 마주하던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참 여렸던 것 같다. 그 땐 나도 적응이 될까, 언젠가는 지금보다 단단해 질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시간이 흐르다보니 조금씩은 단단해져가는 내가 보인다. 그렇게 동료 엄마들을 만나게 되어 위로받고 적응하며 좀 더 다양한 정보들도 들을 수 있었다.
4살 때 아이가 탁한 소변을 보았다. 다행히도 그 때 약간의 정보를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병원을 가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변이 콜라색에 가까웠는데, 이 증상을 '횡문근융해증'이라고 한다. 무리하게 몸을 사용하면 우리 아이들은 근육이 조각나는데 그 조각난 근육 세포가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 소변색이 탁해지는 것이다. 이 증상은 건강한 사람도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일어나는 증상이긴 하지만 근육을 생성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굉장히 신경써주어야 한다. 아마 전에 외톨이 엄마였던 시절에는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증상을 다행히도 동료엄마들을 알게 되고 나서 정보를 듣게 되어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처음부터 서울대학교병원을 다녔는데 이 증상을 계기로 내가 살던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여 며칠동안 치료를 하면서 가까운 지역 대학 병원에서도 이쪽 분야의 교수님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서울대학교 병원과 병행하여 다니기 시작하였다. 처음 응급실에 접수하고 대기하고 있을 때는 우리가 왜 병원에 왔는지도 모르는 인턴 선생님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생각없는 질문들을 뱉어내었다. 옆 자리 아저씨가 안쓰럽다는 듯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의사라고 애기 힘들게 한다며 위로해 주셨다. 오랜 대기 끝에 입원실에 들어가 일주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별다른 치료는 없었고 수액을 맞으며 소변색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물을 많이 먹도록 하거나 수액을 맞으면 정상 소변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 둘째를 업고 좁은 다인실 안에서 보냈던 그 시간이 힘들었지만 하나의 미션을 수행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다음에는 수액을 맞을 수 있는 병원을 가서 수액을 맞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 뒤로는 소변색이 심하게 변하는 일은 없었다. 가끔 진해보일 때 물을 두어컵 계속해서 먹게 하고 시간이 지나 확인해보면 맑은 소변이 나오는 정도였다.
우리는 단톡방을 통해 전국에 있는 엄마들과 소통하고 있다. 나는 그래도 몇 번씩 얼굴을 본 같은 지역 언니들이 편하긴 하지만 전국에 있는 분들이 자유롭게 서로의 고충을 얘기하고 위로하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어 큰 힘이 된다. 솔직히 진행형 질환이란 것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른다. 굳이 비교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지만 다른 장애의 경우, 한 증상에 대해 재활, 치료, 보조기구 등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가 지속되는데 반해, 우리는 언제 장애등록을 해야 할 지, 언제 휠체어를 태워야할지,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하나씩 새로운 증상을 맞닥뜨릴 때마다 난관에 봉착하곤 한다. 외국에서 발행된 근육병 환자를 대하는 매뉴얼 같은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자가 있어 보호자에게도 매뉴얼을 제공하고, 교육기관에도 이해를 시킬 수 있게 되었지만 언제, 어떻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 대비해야 할 지에 대한 걱정이 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증상이 미미한 어릴 때 조차 유치원, 학교에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 지 고민해야 하고, 심지어 증상이 눈에 띄지 않을 때는 항상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지만 이 상태를 교육기관에 이해시키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겪어나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