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봄날은 꽃샘추위로 오는구나.
김붕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와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자녀를 귀한 손님처럼 대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그 귀한 손님은 발도장을 쿵쾅대며 들어서서 수시로 라면을 끓여먹고 씻지도 않은 외출복과 쩐내나는 양말로 안방 내 침대에 드러누워 폰을 하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며 바람이 그랬다고 변명하고는 혼자있고 싶은데 언제 나가냐고 묻는다. 그러다 마침내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쯤 훈계를 시작하면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 손님은 도대체 언제 돌아가는걸까? 아니... 어쩌면 이 손님은 뭐에 씌인것 같은데 언제쯤 퇴마되는걸까?!
나는 또래보다 아이들을 조금 일찍 키운 편이다. 그래서 대체로 이제야 학부형 생활에 돌입한 친구들과 달리, 내 아이중 한 명은 초등을 졸업하고 중딩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초등 고학년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즈음, 동생은 형의 예민함에 억울해 했으며 '형 왜 저뤱?'하고 형 뒤편에서 나에게 궁시렁대고는 했다. 3살 나이차에도 또래처럼 까불까불 잘 놀던 두 형제는 날선 대립상태가 되었고, 어지간해서는 엄마에게 '네' 순하게 대답하던큰 아이는 대답이 어쩐지 내 입을 막는 양, '응. 응. 알았어(그러니까 그만해).' 라는 세마디로 늘어났으며 아빠가 혼을 낼 땐, '그게 아니고오...' 하고 눈물로 억울해하던 녀석도 '왜 말을 못하게 해!' 라는 도끼눈을 뜨고 반박도 곧잘 하게 되었다. 그 모든 변화들은 느닷없지는 않았다. 주변의 더 큰 아이를 키우는 언니들의 구전을 통해 익숙히 예습하기도 했고, 미디어나 유튜브를 통해 곧잘 들었던 아들의 사춘기 & 중2병.(요즘은 중1병으로 내려왔다 한다.) 말하자면 몇 가지 노크 소리를 인지하면서 '올것이 왔군.' 하는 마음으로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현관문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침착하게 계획대로 대응할 일만 남았거늘, 사람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은게 현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의 감정선과 동시에 나를 닮아 만만치 않은 고집의 콜라보는 상상 보다도 더 나를 화나게 했고, 끝을 모르고 늘어지는 게임시간과 친구와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바쁜 그의 social life는 나와는 한참 달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욱 화를 돋구기도 했다.
그랬다, 그냥 얻어들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육아는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챕터를 맞이했으니 나는 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티처스' '조선미 교수님' '오은영 선생님' '김붕년 교수님' '최민준 TV' 등이 연이어 나에게 떠올랐고, '아들 심리학' '사춘기 대화법 어쩌구..' 같은 발달심리 서적 등도 읽어 보았다. 머리로 아는게 부족하지는 않은것 같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속이 뒤집어지고야 말면, 나는 결국 이성을 잃고 결국 고함과 무례와 간섭을 시전하게 되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껏 내가 해온 육아가 체력에 기반해서 나의 기본 욕구를 아이의 욕구 뒤편에 놓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서 때워야 하는 돌봄이었다면, 이제는 체력 보다는 나의 인격과 정신력, 보다 초월적인 종교적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인내심도 체력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제 너를 좀 알것 같은데. 하는 자만심이 인내심을 빠르게 휘발시키는것 같았다.
부족한 중생이여...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수양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 아이가 알려주는구나. 니가 혹시 나를 해탈에 이르게 하는 부처?
그런 마음을 먹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느낄때면 평정과 온화를 되찾으려 심호흡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소환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평정과 온화는 내가 구해야 할 결과값이지 그 자체로 방법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비오던 어느날 밤, 열린 창문 틈새로 들어온 벌레 한마리에 놀란 내가 미친 사람처럼 한밤중에 비명을 질렀다. 이걸 어떻게 잡아야 하나 부들부들 떨면서 주변을 멤돌고 있었는데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온 큰 아이는 내가 연신 '어쩌지? 어쩌지?'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 내 꼴이 웃겼는지 풉. 한번 웃더니 '책 하나 줘봐.' 하고는 벌레를 때려잡고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밖으로 무심하게 휙 던져주고는 잘자라며 슥 들어가는게 아닌가....? 심쿵!! 내 아가가 이렇게나 컸다고?
사소한 순간이었지만,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남편과 둘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큰 애는 씨익 웃으면서 나의 호들갑스런 모양새를 웃기게 흉내내고 그날의 자기 무용담을 같이 식탁에 앉아 킬킬 대며 들었다. 요즘들어 같이 얘기하면서 이렇게 같이 웃었던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최근들어 머릿속에 떠오른 표정은 아이의 무표정과 나의 화난 표정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화를 내고 있었던건 나였고, 화를 내지 않고 대하는 방법을 하루 빨리 찾으려면 억지로 화를 참는게 아니라 웃을 일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참 막막한게... 내 개그코드랑 요즘 애들이랑 맞는것도 아니고(애초에 개그감이 0이다...), 항상 허허실실 소리만 할 수도 없고, 이 즈음 아이를 웃게 하는건 친구들과 있을 때나,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 게임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게임이라도 같이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건 영 취향에 안맞고. 그럼 내가 좋아하는 것중에 아이가 좋아하는건 없나? 하고 돌이켜보았다. 일단 나는 소설, 드라마, 영화가 내 인생의 메인텍스트고 현실도피처고, 주력 컨텐츠고 삶의 길잡이와 같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가 재미있다는 것을 강요하지만 않으면 큰 아이도 꽤나 책읽는걸 좋아하는 편이고, 결국 게임하는 시간. 숙제 하는 시간, 학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책을 읽거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본다는 사실이다. 그럼... 애가 좋아하는걸 같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학년 추천도서, 논술 필독도서 이런 리스트들 다 때려치고, 그냥 순수하게 애가 좋다는것 중에 내가 읽고 볼 만한것은 같이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아이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이밀어 보고, 공감대를 채우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좀 더 늘려나가 보고 싶어졌다.
좋아하면 따라한다 던가. 내 아이에게 이러한 노력이 '우리는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해.' 라는 제스쳐로 다가가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