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치이고 돈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능력에 치이고, 그러다보니 '이제 그만'을 떠올리는 나약한 나와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늦어서 무슨 뭘 하겠다고. 사서 고생하고 있네. 공부도 다 때가 있는거지. 맨날 청춘일 줄 알아. 쓸데 없는 짓 하고 있네. 이런 말들을 몰라서 하는 소리지 공부에 무슨 때가 있어 고생도 내가 하지 지가 해 좋아하는 거 하겠다는데 오지랖도 풍년이지 정신만 살아 있으면 죽을 때까지 청춘인데 ...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들은 나를 찌르는 말들에 대한 방어였으며 이러고 있는 내가 자포자기 할까마 던지는 위로의 말들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뭐라도 붙잡고 허우적 거리는 처절한 독백이었을 겁니다.
귀를 닫고 내 이야기만 듣자고 생각했던 날들이 마구마구 떠오릅니다. 다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했고 나약한 나는 어디에도 비빌 곳이 없으니 나의 중심을 내 안에 세우며 멋스러운 척 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위해 시동을 걸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괜찮은 척 했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4년이 되고 ... 그 꾸준함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에 와 보니 별것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별것 없습니다. 몸이 지치니 생각만으로 끌고 갈 수 없는 지경에 달하기도 합니다.
어디에 속하고 싶고 뭔가 구체적인 것을 손에 쥐고 싶어 이것저것 마구 시도하는 제가 보여 안쓰러워 꼬옥 안아줬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건 나만의 이야기고 내 안에 흘러가는 시간이었을 뿐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겠죠. 바쁜 것 같은데 실상 까놓고 보면 바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먹을 걸 구하는 일도 아니며 누군가를 이롭게 하는 일도 아닌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 이쯤에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 말하는 그날이 오고 만 것이겠지요.
배우러 나가는 날들이 길어지다보니 뭘 위해서 이리 왔다갔다 하나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 만나는 사람들은 제게 대단하다 빨리 시작했다 꾸준히 해야한다 여려진 제 마음에 말들을 얹어 놓습니다. 정말 그럴까. 얇은 귀는 움직이고 그러한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곱씹어 봅니다. 이런 말들에 위로받고 힘이 생기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정말 그럴까 의구심이 생겨 풀썩 주저 앉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해 두리번 거렸고 모임에도 나가보고 발걸음을 해서 사람을 만나도 보고 늘 가던 곳을 떠나 새로운 것을 쭈뼛거리며 발을 들여 놓기도 해봅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돈이라도 벌고 있으면 좀 맘이 편해질까요. 자꾸자꾸 미운 마음만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새벽에 붓글씨를 써봤습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감각은 다시 살아나더군요. 손이 기억한다는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노력한 것이 공기중으로 산화돼 사라졌을까봐 내심 걱정했습니다. 결국 돈 들인 게 아까워 조바심 났다고 말하는 게 좋을 텐데... 흩어지는 마음들을 거두고 거두고 또 거두어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들이 제게만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서예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데 도서관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서 엇그제 봤던 전시회가 아직도 조명을 밝히며 문을 열었더군요. 뭐가 그리 바쁜지 대출한 그림책을 며칠이 지나서야 반납하러 들른 도서관에서 일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는 것도 모르고 뒷걸음질 쳐 돌아가려는데 늦은 시간까지 환하게 불이 빛나는 전시관을 쭈뼛거리며 들어섰다가 참 멋진 그림을 만나게 됐습니다. 다시 찾은 곳에서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 그림들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듣다보니 시간이 성큼성큼 뛰어가더군요. 자리를 뜨려는 제게 꾸준히 멈추지 말고 그려요. 10년은 쭉 그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그림을 내놓게 되네요. 계속 그리면 돼요.
꾸준히 하면 계속하면 쉬지 않고 하면 정말 될까. 의구심이 들었던 제 질문에 상투적이라 생각했던 자주 듣던 그 말은 아주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며 달려왔던 사람의 말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