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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Dec 01. 2021

미술이 별건가요...

돌부리. 길을 다니다보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닐 거다. 반듯하지 못하고 땅위로 봉긋 솟은 뾰족한 부분을 말하는데 요즘 아주 자주 그런 부분에 걸려 몸을 아찔하게 기우뚱 거리기도 한다. 정신없이 주변을 살펴보느라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인데 요즘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더욱 많다는 생각을 한다.


꼬맹이의 어린이집을 오고가며 아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상의 흔적들은 무시될 수도 있겠는데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달라질 것들이 그저 신기하고 눈여겨 볼만 한 가치가 있다 생각하게 됐다. 길가 카페 창가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어제의 모습이 아니고 오늘의 다른 모습으로 창밖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나도 그 대상 중 한 명이겠구나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생기는 거다.


돌아오는 길에 있는 산책로는 어떠한가. 어제의 낙엽의 색은 오늘 것과 너무도 다른 것이다. 노란 잎이 군데군데 더 많아진 것이며 바닥에 쌓이는 낙엽은 바스락 거리는 소리 또한 다르게 들려온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감성이라면 시를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난 더 아름다운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도구는 글도 있지만 그보다 더 멋진 붓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직도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 보면 아직 그려낸다는 것에 환상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얼마전 21학번 단체톡에 남양주 어떤 기관에서 자신이 진행하던 유아동 창의미술 지도를 맡아줄 선생님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배 따는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도 내 마음은 그 글을 보면서 요동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회화과 졸업 후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고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한 몫 한 듯하다.


난 입시 미술을 거치지도 않았고 4년을 공들여 미술을 공부한 경험도 없다. 그렇기에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칠 역량도 없을 뿐더러 그런 욕심은 더욱이 가질 수 없는 형편이다. 그건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미술을 경험해 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창의적 미술의 발걸음을 뗄 수 있게 도울 수 있겠단 생각은 든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예술을 할 수 있는 그들은 바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일. 주변의 사물에 예술이란 옷을 입혀 나만의 것으로 껴안을 수 있게 하는 일. 시시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일. 그런 것들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하는 일. 난 그런 일을 하고 싶다. 그런 과정을 통해 미술을 전공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이 있다면 너무 기쁘고 흥분되겠지만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경험하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써의 예술은 아이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기 때문에 나도 무언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무척 신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후 3시, 오후 4시, 오후 5시 타임의 수업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일단 관심 표현을 해 놓고 급하게 마음을 접어야 했다. 아직 나에게 중요한 대상이 두명이나 집에 있으니 너무 서두르지 말자는 생각으로 학업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요즘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정신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주변의 것들이 모두 표현 대상이고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데 참 재미있는 일이다. 손에 스치고 발길에 차이는 풀, 낙엽, 나뭇가지들이 아주 훌륭한 창의적 드로잉 도구로 모습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네모난 도화지와 붓을 손에 들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풍부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빨리 알려주고 싶다.


재활용품을 가지고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알고 또 집에서 엄마표로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 수준의 미술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도화지에 또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일수일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다. 기성 작가들의 멋진 작품은 비싼 붓과 도구들 그리고 큰 캔버스를 가지고 완성된다 생각하기 때문인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롤러에 고무줄을 둘둘 감고 그 위에 물감을 발라 색다른 패턴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발길에 차이는 수많은 나뭇가지들을 묶어서 그 끝에 물감 또는 미술 재료를 바르고 드로잉을 하기도 한다. 중국의 어떤 예술가는 청소 도구인 대걸레에 물감을 흥건히 묻혀 큰 종이에 척척 발라가며 힘차게 뛰어 오르는 말을 그리기도 했다. 그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미술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멋진 그림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감성이 소히 돈 많고 잘 나가는 그래서 여유있는 삶을 누리는 사람들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예술 작품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다. 아이들의 그림을 따라가기 위해 평생을 보낸 예술가들도 있다. 사실적 묘사에 서툴러서 아무렇게나 해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미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현대미술은 못 그려도 못 만들어도 미술을 할 수 있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 행위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부추기는지도 모르겠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미술관 나들이를 할 수 있을까. 돈을 더 많이 벌면 그림을 한 점 사서 거실에 걸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와 미술이 더 나아가 예술이 어떤 아주 미세한 것이라도 연결이 되어 있어야 그걸 느끼고 해보겠다는 엄두를 낼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의식주에 머물렀던 생각은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하면서 점차 유연해질 것이다. 그 유연한 사고는 확장될 것이고 대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치스럽다 생각하기 보다 의미있다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미술의 힘이고 행동하는 삶 속에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될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일을 하고 싶다. 국영수에 밀려 재미있게 하던 미술 놀이, 음악 놀이, 운동 놀이를 그만둬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은 우리 아이들을 삶은 어려운 거구나 쉽지 않은 거구나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데 '표현 놀이'를 계속 이어가면 좋겠단 명제를 더욱 분명히 하는 것 같다.


아이들과 어떤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는 창의 미술 선생님을 생각해본다.




#미술이별건가요

#뭐가창의적인가요

#무엇을이용해그림을그릴까요

#잘그리냐보다무엇을어떻게그리냐를생각해보죠

#붓으로그림을그리는건미술의아주극히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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