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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Jan 14. 2022

부끄러워요=잘하고싶어요

"선생님,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가지고 대화 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요."

"선생님, 자화상은 처음이라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부끄러워요. 방법도 모르겠고요."

"선생님, 제가 뭐라고 뛰고 나는 미술인들 내는 공모전에 출품을 꿈꾸겠어요."

"선생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꾸 제가 작아져요."


잡다한 생활물품, 계절이 아닌 옷을 넣어두는 커다란 서랍장 그리고 창문 아래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책상. 그래 나의 책상이 책들과 화구들과 함께 지저분하게 자리잡고 있다. 에어컨 바람은 코너를 돌지 못하고 선풍기는 다른 방에서 빌려와 겨우 틀 수 있는 작은 방, 난 창턱을 넘어 내게로 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걸까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다시 생각하며 새벽의 문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은하씨를 촛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모두 작가라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고요."

"아닌데?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하게 되요."


평생을 배우며 살아가야하는데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 내가 해낸 것들을 생각하며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을 부끄럽다 느끼게 될까? 자신감 정도 내게 선물해도 괜찮을 텐데 무엇을 해도 여전히 망설여지고 부끄럽다. 그건 어쩌면 비슷한 대상들에 대한 비교에서 오는 부족함을 느껴서 그런 것일 테다. 나만 보고 가자고 해놓고는 비교를 하며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해야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작은 방에 전보다 큰 캔버스가 들어왔다. 밑그림을 그렸다 지웠다하면서 캔버스 앞에 오래 머물게 되니 등줄기를 타고 물방울이 흐른다. 입에서는 시큼하고 뜨거운 김이 숨을 내쉴 때마다 신경을 건드린다. 그러다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작은 캔버스의 그림을 옮겨놓고 그 앞에 또 우두커니 서있다. 멍하다. 아들이 인기척도 없이 옆에 서더니 이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묻는다.


"엄마? 빈 캔버스를 뭘 그렇게 오래 쳐다봐요?"

"엄마? 다 그린 그림을 뭘 그렇게 오래 쳐다봐요?"


빈 캔버스는 '어쩌지' 하면서 쳐다보고 다 그린 그림은 '된건가?' 하면서 쳐다보지. 시작 전에도 걱정이고 마무리 할 때도 걱정이고 그렇다. 그럴거면 이렇게하나 저렇게하나 뭐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이라면 일단 하고 본다는 생각이다. 내 그림에 '작가가 부끄러워했어요'하고 써 있지 않은 이상 난 그저 그림을 그린 작가일 것이고 그 그림을 보며 어떤 상상을 하든 보는 사람들의 몫일테니 '우기면된다'가 정답이다.


부끄러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만이 정답은 아니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으로 불확실 한 것에 흔들릴 뿐 그건 나의 역량 때문에 부끄러운 게 아니다. 비교하는 순간 부끄러워진다. 누구나 그렇다. 부끄러움의 원천이 무엇인지 루트를 찾아 길을 내주면 될 것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지금의 나를 인정한다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인정에서 끝나면 더욱 부끄럽겠지만 극복하고 다음 계단으로 발을 옮기면 조금더 다른 차원의 부끄러움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한다.


우기고 뻔뻔해지고 싶은 밤이다.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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