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이겨내는 우리에게 바람 불어 시원한 날을 기다리며...
여름은 늘 이렇게 정신없고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던가. 유독 일어나는 문제의 무게감이 느껴져 허우적거리는 요즘인 듯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날이 올지. 지금의 사안들은 그럴만한 것들이 아니다. 일이 되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되든 말든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시원하게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고 나니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에 대해 골돌하게 된다. 더 웃긴 건 책임을 지고 끝낼 문제도 아니다. 무조건 일이 되게 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무조건'이란 말은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이 더운 여름날. 지나가고 있기는 한가. 여름의 초입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오는 그 끝을 희망한다는 건 이 시끄런 여름을 통으로 버릴 작정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무조건' 이 여름을 버텨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난 그래도 괜찮다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끙끙거린다. 악도 써보고 잠잠한 숨고르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문제의 원인부터 차근차근 뒤적거리기도 해 본다.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기로 작정한 순간 더 큰 발악의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조금씩 해결된다 생각하며 시원한 그늘을 찾아들어 잠시 쉬고 싶을 때 그곳이 떠오른다. 더 큰 여름을 견뎌내고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여름쯤이야 별 것 아닌 게 된다. 그제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늘어진 볼을 치켜올려준다.
나의 고향. 부모님이 계신 곳. 더운 여름을 버티며 뜨거운 태양 아래 흙과 먼지와 싸움하고 있는 그곳. 혹독한 시절을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을 아빠 그리고 그 옆에 엄마. 호박밭에 호박이 찌그러지고 있다며 앓는 소리를 하시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안쓰러운 소리다. 잠깐 이슬을 맞으면 시작하는 아침을 지나 해가 오르기 시작하면 땡볕을 감당할 수나 있을까. 그 쇠약해진 몸으로. 내 몸은 서울에 묶여 주말에야 내려갈 수 있으니 호박 가득 얹은 바구니 하나 들어줄 재간이 없다. 시원한 주스라도 타서 마주 앉아 뜨거운 여름 욕이라도 하며 시절을 함께 버티며 여기 있다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말이다.
호박 넝쿨이 아케이드처럼 망을 감고 올라가면 그 아래 일렁이는 그림자가 살아 움직인다. 초록의 겹겹을 얹어 만든 그늘은 농담이 다르다. 그런 아름다운 그림자를 아빠도 일하며 바라볼 수 있길 바라지만 주접떤다 혀를 차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나름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식이니 괜찮다. 우리는 슬픔의 문을 열고 이 모든 아픔을 거스르고 빛의 편으로 삶의 품으로 다다를 순 있을까. 이적의 반대편이란 노래 가사다. 서로의 반대편에서 삶을 아파하며 만져주는 존재.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알아봐 주니 것으로 됐다. 갑자기 '엄마 보고 싶다. 아빠 보고 싶다' 말하니 딸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나도 내 엄마가 아빠가 보고 싶단다 아이야.
시원한 밤막걸리 두어 병 챙겨 호박 따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