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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이또이 Sep 21. 2024

아무렇지 않아야 된다

내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일 뿐...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는, 아니 해야만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같이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요즘에는 더욱 신경이 예민하고 작은 괴로움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하기 싫다는 마음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괴로움의 실체는 늘 살아있는 셈이다.


아빠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면서 매일 아침을 새벽에 일어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마음이 밭에 가 있다는데. 다른 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빠의 일은 쉬어가야 할 일 어려운 일 때려쳐도 진즉에 때려쳤을 일이었다. 정작 본인은 칠십 후반의 몸에도 동만 트면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고 동트는 시간이 늦은 겨울에는 방에서 좀이 쑤셔 에먼 티비만 시끄럽게 울어대며 엄마의 잠을 깨운다. 


좋을 게 없었고 쉬운 일은 더욱이 없었던 어린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이들에게 지치는 일은 그져 할 일이 없는 그 상태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건지… 뭐든 할 일이 있으면 슈퍼맨 처럼 나타나 후다닥 해치우고 사라지는 아빠가 있어서 난 그런 삶이 당연한 줄 알고 산다. 아빠의 나이에 시원한 에어컨을 찾아 도서관에 앉으면 하루의 반은 책읽는 즐거움에 시간을 보내는 분들을 볼 때마다 '어찌 삶이 이리도 다르냐.' 무심한 척 삶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는 척 지나치며 숨을 몰아쉰다. 그 숨은 자리를 뜨고 나서야 토해내니 쉰 내가 날 법도 하다. 가시지 않는 체증.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노년의 나이에도 시간을 잘라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의 앞으로는 좀 내려놓고 싶다는 회피적 삶의 방향으로 키를 잡게된다. 잘 되겠지. 별거 아니지. 뭘 그렇게 안달복달 살아. 그런 정신으로 하루라도 세상의 시간을 흘려보내게 되니 이건 살아지는 거지 재미가 없다. 아침을 기다렸다 밝기만 하면 나갈 수 있는 건 삶에 애정이 있기 때문일 거다. 방식이 다를 뿐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삶을 사랑하는 아주 흔한 마음이 아직은 존재하기 때문일 거다. 내 몸을 일으켜 세워 세수하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 밥을 짓고 또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 앞에 서게하는 그 원동력은 뭔지... 오늘 새삼스럽게 그것을 위대한 무엇으로 부르고 싶다. 


22년 봄에 방영을 시작했던 '나의 해방일지'를 최근에야 보게됐다. 억눌렸던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편 두 편 해방일지를 보는 내내 울컥하기도 빵터지기도 여러번이었다. 그 중 고모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 조태훈과 염기정의 대화가 오래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전 이상하게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좋아요. 30년 후에 쟤는 어떤 짐을 지고 살아갈까. 어떤 모욕을 견디며 살아갈까. ... 나니까 견뎠지 저 애는 그 어떤 애도 그런 일은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유림이가 있어서 좋았고 유림이 없다는 건 상상도 못하지만... 난 태어나서 좋았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흠... 아니요. 그래서 기정씨가 임신 아니라고 했을 때 불쑥 다행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 같아요.' 


남편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몸을 툭 던지듯 쇼파에 앉아 혼자말을 시작한다. 내가 지금 답답한 건 ... 일이 터지면 괴롭히다 마무리 된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와서는 힘들게 해. 그리고 좀 잠잠할까 싶어 숨을 고르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그것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내게 달려드는 것 같아. 그러니 지금 성장기 애들이랑 매일같이 부딪히고 싸우는 것 같아도 내가 답답하고 힘든건 쟤네들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도 문제들이 생겼다 사라지고 또 오고 이런 순환구조에서 나는 어떻게 어떤 힘으로 그것들을 이겨내며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냐는 거야.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 하겠지만. 태어나길 걱정 많고 생각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풀며 살아가야 하잖아. 잠자고 있는 네 뒤통수에라도 대고 떠들어야 꼬여있는 마음이 조금 풀릴 것 같아서 던져 보는 거야. 


내일 아침에 내 몸을 일으킬 수 있으려면 말이야. 우울한 느낌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희망을 찾기보다 묵묵히 나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와 같아서 위로 받았다. 


살을 태우듯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에 장마처럼 비가 쏟아지는 오늘이다. 매미들은 언제까지 울고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제 울던 매미가 여름을 내게 맡기고 후다닥 자리를 뜬 이유가 있었구나. 견디지 못했던 거지. 여름이 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돌아가지 않고 있으니 지들먼저 먼 곳으로 날아간 거겠지. 이까짓 여름이야 난 벌써 보낸지 오래되었다. 여름과 싸우며 한 철을 보낸 분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무슨 수로 더위 때문에 못 살겠다 하겠나. 그들도 버티니 나도 버티며 아니 그냥저냥 보내는 거지. 우리는 그렇게 위로 받으며 하루에 하루를 더하며 내일을 여는 거다. 아무렇지도 않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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