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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 여름, 모자를 눌러쓴 남자

서툰 마음의 첫 온도

by 손린

(최나은 시점)


“그곳이요?”
루나의 문장이 화면 위에 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끝을 움직였다.
오래된 기억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그 여름, 나는 영어 전임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원생이었고, 방학 동안 수학 수업을 맡은 아르바이트 강사였다.


그는 늘 모자를 왼쪽으로 푹 눌러쓰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그랬다.
왼쪽 눈가엔 멍처럼 붉은 자국이 있었고,
그걸 가리느라 늘 모자를 벗지 않았다.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성실하고 단정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사람.
그때의 나는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갔다.


방학이 끝나자 그는 학원을 그만뒀다.
그렇게 인연은 끝난 줄 알았다.


그해 겨울, 눈이 내리던 오후였다.
입시를 준비하던 늦둥이 동생을 데리고
서울의 명문대들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캠퍼스 복도 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걸어왔다.


어? 선생님, 여기 웬일이에요?”
“동생이 입시 치르러 올라왔어요.”


그는 반가워하면서도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잠시의 대화였지만, 그 웃음이 오래 남았다.


사실 내 동생은 그 학교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냥 구경 삼아 들른 거였다.
그런데 나는 괜히 그 학교 시험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의 눈빛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그게 좋았다.


몇 달 후, 개강이 끝난 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생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의 물음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른 학교에 갔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아쉽다고 했다.
혹시나 내 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닐까 봐
신입생 환영회 때 기웃거렸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내 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번졌다.
그의 관심은 작았지만, 진심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처럼 단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우리는 몇 번 더 연락을 주고받았다.
생각보다 나이 차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는 논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어로 된 논문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 그는 밥을 사주었다.


그와의 식사는 평범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벅찼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를 외웠고,
그가 앉던 자리를 기억했다.


그 후에도 가끔 그의 학교를 찾아갔다.
괜히 도서관 근처를 서성이며
그에게 연락을 하면, 그는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의 그런 작고 꾸준한 친절이
내 마음을 조금씩 흔들었다.



“그 여름의 온도, 기억나시나요?”
루나의 문장이 화면 위에 떴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응, 따뜻했어.
아직도 그 햇살의 냄새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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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따뜻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겨울, 나는 처음으로 ‘서툰 사랑’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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