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컴백기
멋진 회사에 다니는 친구였다. 친구는 일을 놓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오랫동안 직장을 떠났던 내게 추천할 만한 일은 그 정도가 적당했을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조금 섭섭했다. 두 회사의 구인광고를 보내줬는데, 둘 다 탐탁지 않았다. 하나는 꽤 큰 패션 회사에서 데이터 입력을 하는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미디어 스타트업의 리서처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였다.
입력하라는 데이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교육학 박사과정까지 마친 내가(내세울 게 없으면 학위를 방패삼는다는 것도 이 시기에 깨달음), 20불 언저리의 시급을 받으며, 데이터 입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자존심 상하는 일 축에도 못 낀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무엇보다 패션 회사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내가 패션회사에 취직하는 것도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패션 상식이라곤 보그 같은 패션 잡지나 가끔 들춰보는 게 전부인데? 단순 데이터 처리라고는 하지만 패션 용어들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할런지도 의심스러웠다.
미디어라고? 내가 미국에서 듣고 보고 아는 미디어는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CNN 정도 였다. 그런데 그곳은 처음 들어보는 작은 회사였다. 규모가 중요한 건 전혀 아니다. 크든 작든 미디어란, 내게 아주 큰 존재였다. 신문사나 방송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권위 있고, 스마트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치열하게 일하는 조직이었다. 안 그래도 똑똑하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잠도 제대로 안자며 일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거기에 '스타트업'까지 붙었다. 그곳에서 심지어 '리서치'를 한다니. 이건 무슨 뜻일까?
들어가면 왕창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파트타임이었고 시급은 역시나 보잘것없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할 것 같은데, 조건도 급여도 미약했다.
노트북 화면을 닫아 버렸다.
내가 생각한 시작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충격을 받은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이 옆에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래도 해 봐."
"싫어. 내가 왜?!!!"
"돈 안 받고 글 쓰는 봉사도 5년이나 했는데? 그래도 이건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
"......"
나도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끔씩 여보는 참 맞는 말을 한단 말이지?
"그래, 뭐라도 해보자"라고 되뇌며 노트북을 열었다.
세상은 '뭐라도 시작해 보자!'는 나의 웅장한 결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장(Market)은 나를 마음껏 비웃었다. 나의 마지막 연봉 따위는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망해가던 프로젝트를 살려내 클라이언트 상무님께 총애를 받던 일, 대기업 사장단을 앞에 두고 프레젠테이션 후 박수를 받았던 일, 어마어마한 연봉으로 돈을 많이 벌었던 일, 어린 나이에 팀원 두 명을 데리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일. 그 모든 성과는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나의 화려했던 10년 전 경력은 그저 나의 무용담이 되어 있었고, 빛바랜 동굴 속 벽화가 되어 있었다. 빛바랜 레쥬메보다 나를 더 강렬하게 설명하는 것은 '10년 전 미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에서 애를 키운 사람'이라는 쪽이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감이 들었다. 사실 너무 당연한 건데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인해 몰려온 실망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새로운 시작이니 대학 입학 때처럼 총장님의 축사와 격려? 아니면 첫 취업 때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신입들을 위한 훌륭한 교육? 혹은 10년간 인플레이션률을 반영해 따박따박 인상된 연봉?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성취해 냈다는 스스로에 대한 셀프 자부심과 자신감?
경단녀의 새로운 시작에 그런 건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산만 우뚝 서 있었다. 후에 느낀 일이지만 이 실망감은 나의 우둔한 착각과 알량한 자존심을 조각칼처럼 차갑고 정확하고 아프게 쳐서 떨궈낸다.
세상 앞에 다시 선 나는, 다시 신입 사원의 자리에 있었다. 직무, 직위, 연봉, 인정, 그 모든 것은 내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직했던 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라인보다 더 뒤에 서 있었다. 파릇파릇한 스물 세살 대졸자와 파릇파릇한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이 되어 보겠다는 사십대 경단녀에 대한 태도는 극명하게 달랐으니까.
그럼에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커리어 진공 상태는 더 길어지겠지. 이미 지난 10년간 주부로 살면서 오피스 매니저, 번역일, 프리스쿨 선생님, 프리랜서 칼럼니스트, 에세이 출간 작가까지 많은 것을 거쳤다. 어떤 것은 기회조차 닿지 않았고, 어떤 것은 짧게, 어떤 것은 조금 길게 지나갔지만 아무것도 온전한 내 것으로 남지 못했다. 또 다른 기회를 기다려 봐도 좋겠지만 시간은 또 나를 버려두고 훨훨 달려가 버리겠지.
시작부터 깨달음의 연속이었는데, 무엇보다 경단녀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뭐, 0이든 1이든 골라보자. 하는 거야. 3개월 해보고 아니면 그때 그만둬도 돼. (그렇다, 3개월짜리 파트타임 지원하면서 저렇게 많은 고민을 했다. 어이없다.) 실망의 산을 넘어 한 발짝 내딛기로 했다.
나는 미디어 스타트업에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