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함과 개운함.
북부 캘리포니아는 한 겨울 우기가 들어서지 않으면 늘 잔디가 푸르다.
그런데 요즘 어디서 날라 왔는지 하나도 없던 민들레가 하나 둘 생기더니만
오늘 보니 급기야 마당 한 구석이 온통 민들레로 뒤덮여 있다.
우리 집에 오는 가드너는 잔디를 깎고 가지치기를 도와주긴 하지만 잡초를 뽑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솎아 내야지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었더니 이 모양이다.
오늘은 기어코 손을 봐야겠다 싶어 다가가 주위를 살피니 나무 밑으로는 민들레 외에도 이름도 없는 새로운 잡초들이 가지각색이다.
자세히 보니 클로버도 어느 순간부터 자랐나 보다. 어릴 적 보던 클로버 꽃은 하얀색으로 기억하는데, 그것으로 분명 꽃반지도 만들고 꽃목걸이도 만들었는데. 우리 집으로 찾아든 클로버의 꽃은 샛노랗다. 기억이 새로워지는 만큼 손은 느려진다. 저렇게 작아도, 저도 꽃이라고 힘써 피워냈을 텐데 싶어 잠시 안쓰러웠지만 솎아내겠다는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썼다. 초보답게 집에 있는 작은 모종삽과 호미 등 온갖 도구를 다 챙겼다. 익숙하지 않아 자세도 어섶렀지만 쭈그리고 앉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 옆에서 놀고 있던 아들이 하얀 꽃씨가 가득한 민들레나 노란 꽃이 달린 클로버를 뽑아내는 엄마를 보고 눈이 똥그래졌다.
엄마! 그건 꽃이야!
옆에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엉? 어, 그래.
대충 대답하고는 민들레를 뿌리 채 뽑아 올리려고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성한 민들레와 잡초를 뽑아내려고 나는 햇볕 아래 씨름이 한창인데, 아이는 계속 쫓아다니며 안타깝게 소리친다.
엄마, 꽃은 뽑지 마! 노란 건 꽃이야!
아들의 예쁜 마음 씀씀이 잠시 손이 멈췄다.
아휴, 이걸 어쩌나.
아이야, 예쁘다고 다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어떤 꽃들은 우리 잔디를 망치기 때문에 뽑아야만 해.
간단하게 대꾸를 해주고는 다시 민들레, 꽃 핀 클로버, 깻잎 닮아 잎이 넓은 잡초들 까지 쏙쏙 뽑아낸다.
살겠다고 이것들도 이다지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구나 놀라웠지만, 이내 쉽게 뽑히지 않는 민들레 뿌리에 화가 난다. 그래도 어쩌랴? 살아야 하는 것은 잔디인 것을! 손에 다시 힘을 준다.
여긴 잔디를 위한 마당이다. 그러니 잔디가 아닌 것들은 꽃을 피운다 해도 다 뽑혀야 마땅하다.
게다가 잔디는 어마어마하게 자라지 않는다. 적어도 몇 주 안에는 말이다. 그리고 심긴 자리를 지키며 자라는 반면, 씨를 뿌린 적도 없는 민들레는 번식력이 빠르고 영역이 없고 급하다. 그대로 두면 멈출 기세가 없어 보인달까? 게다가 마당의 색마저 바꿔 버린다. 낮에는 대부분이 노란 꽃이다가, 저녁이 되면 하얀 꽃씨가 가득한 모습으로 일제히 변해서 하늘 위로 씨를 날린다.
그렇게 민들레를 뽑으며 잔디며 흙 사이에 한참 있자니, 중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운 민초, 잡초라는 비유가 문득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사에게 잡초는 '잘 가 꾸인 정원'이라는 목적에 매우 방해가 되는 존재다. 내 소중한 정원을 망치는 성가시고 나쁜 존재. 그래서 못 자라도록 약도 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면 이렇게 송두리째 뽑아 내쳐지는 존재. 그런 것이 잡초다. 잡초로 분류되면 꽃이 있고 없고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잡초는 잡초고, 그래서 버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서민들을 그런 잡초에 비유하다니! 서민들이 그렇게 보잘것없고 성가신 존재란 말인가?
물론,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살아내는 그 질긴 생명력을 비유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눈에는 수많은 서민들이 잡초같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면, 혹독하게 관리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씁쓸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해서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인정도 받고, 힘도 얻고 싶은 건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뽑혀 버리고 싶지 않아서?
잡초 솎아내기를 하고 있자니 이는 마치 목적이 있는 자와 생존이 목적인 자의 싸움 같다.
우리네 삶도 그런 걸까? 우리는 목적이 있어서 이 머나만 미국 땅에 살고 있는 걸까? 생존이 목적이여서 이 곳에 살고 있는걸까? 질문이 꼬리를 물 무렵, 잡초를 얼추 다 솎아낸 것 같다.
허리를 세우고 땀을 닦는다.
잠시 한가득 솎아 낸 잡초더미 위에 시선이 머문다.
그러나 곧, 미뤄 두었던 일을 마치고 난 후의 개운함로 마음이 시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