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이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된 건 2년만 이었다.
위스테리아 (Wisteria).
처음엔 그냥 덩쿨나무려니 하고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냥 변하는 계절을 따라 보이는 대로만 간혹 무심히 스쳐 보았다.
여름이 되니 나뭇가지가 무성히 뻗어 나간다.
봄철에는 보라색 꽃들이 무겁게 무리 지어 고개 숙여 흘러내리지만
여름에는 열매 맺는 나무가 아니다 보니 잎만 무성하게 자란다.
자라 가는 모양이 꼭 메두사 같기도 하고, 뻗어나가는 가지들을 보면 생존력이 남다르다고 놀라곤 했다.
같이 살면서 이름도 묻지 않고 대했던 불쌍한 나무.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앞마당에 있는 이 나무가 지붕을 타고 올라가 지붕과 처마를 망치는 것 같아
매우 못마땅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직접 베어낸 것은 아니고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을 뿐인데
점심을 먹고 오니, 당시 마루를 새로 깔아주던 시공업자가 선물이라며 털썩 베어 내 버린 것이다.
섣부른 인부 아저씨에게 화를 내기도 뭣하고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위스테리아는 떠난 후였다.
그렇게 어이없게 만남과 이별을 속전속결로 한 나무인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올봄이 왔더니 이것들이 부활을 했다!
쳐낸 밑동이 마치 원래 자기는 키가 작은 나무였다는 듯이
그 밑동으로부터 작은 가지들이 뻗어 나와 다시 앞마당을 덮기 시작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얼마나 가열차게 자라는지 옆집 앞마당까지 침범하는 중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던 나무였지만,
다시 꿋꿋이 살아나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조금은 반갑기도 해서 마침 애정이 좀 생기는 듯했다.
물론, 아이비 나무처럼 벽을 타고 올라오며 자라는 이 나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옆집 아줌마인 쉐리에게 우리 집 앞마당의 이 나무가 골칫거리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금발이고 동그란 갈색 눈을 가진 그녀는 다 큰 대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50대이다.
나는 이 나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너희 앞마당까지 넘어가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훌륭한 정원사이므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했고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집 앞을 나섰는데
그녀가 웃으면서,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쓸어내며, 굿모닝 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저 많은 나뭇가지들은 무엇인가? 하고 놀라 돌아보니....
우리 집 위스테리아가 그 밑동만 처량하니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멀건 위스테리아 밑동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가지 한 줄기만 남기고 내가 다 잘랐어.
너무 고마워하진 않아도 돼.
너무 황당한 나는, 네가 왜 이걸 왜 했어?라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어머~ 괜찮아~ 내가 좋아서 한 거야, 운동 겸 했어, 신경 안 써도 돼! 눼버 마인드!"
아! 불쌍한 위스테리아!
대체 위스테리아에 대한 나의 발언은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아니면 위스테리아의 기구한 운명의 문제란 말인가?
나는 없애 달라고 그 누구에게도 부탁한 적이 없다고!
나는 그저, 너에 대해 조금 불평했고, 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했을 뿐인데....
뾰족뾰족하니 짧게 잘린 나뭇가지와 애처롭게 혼자 남은 기다란 한가닥 가지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고 갑자기 미안함이 몰려온다.
무관심하게 두었더니, 한 두 마디 툴툴거렸더니, 밖에서 조차 천대받는구나 싶었다.
같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싶어 미안했다.
무심코 뱉은 말에 네가 고생을 두 번이나 했구나 미안했다.
아.. 말조심해야겠다.
내일 아침에는 두 번이나 바깥사람들에 의해 잘려버린 위스테리아에게 사과하고 보듬어 주어야겠다.
같이 살 방도도 연구해 보고 말이지.
미안하다, 위스테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