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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굳찌 Jun 02. 2021

혁신 없는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3가지

스타트업 센싱 일기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스타트업을 센싱하는 업무를 한다. 


마침 세상은 온통 스타트업에 관심이 뜨겁다. 청년 실업과 조기 퇴직, 그리고 늘어난 수명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도록 내몰고 있다. 난 그 가운데 스타트업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하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메꾸고 언제 붙을 지 모르는 공무원 시험을 고시원에서 준비하는 것 보다 스타트업이 내 취향에 맞는다. 대기업에서 승승장구 승진해서 C레벨 임원이 되는 것도 너무 훌륭하고 존경스럽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스타트업은 더 매력적이다. 은퇴를 하고 치맥집을 운영하며 내 가게를 가지는 삶도 좋겠지만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동료들과의 교류를 이루는 스타트업은 정말이지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대기업을 나와서 작은기업을 차렸다고 스타트업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 한두가지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서 다 스타트업이라고 볼 수도 없다. 기존의 방식을 끊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어야 혁신이고 진정한 의미의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내가 바라보는 스타트업은 뭐냐고? 

스타트업의 핵심 키워드는 당연히 '혁신'이다. 그것이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든 파괴(Disruption)이든 간에 혁신은 '변화'를 일으킨다. 사고 체계의 변화를 일으키고,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고, 결국 비즈니스 마켓의 변화를 이끈다.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곳이 스타트업이다. 


물론, 스타트업 센싱을 하면서 이 아이디어 정말 좋다고 생각한 기업도 펀딩을 못받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곳도 있고, 이제는 너무 식상한 비즈니스 모델이라 전혀 스타트업 같지 않아도 일단 뜨는 분야면 벤처 캐피털들이 모이는 경우도 많다. 트렌드 키워드에 걸리는 사업을 하고 있으면 벤처 투자자들은 모인다. 리스크를 걸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벤처 캐피털의 사명이겠지만, 투자대비 수익률에 민감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스타트업은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과 수익이 만나는 곳이다. 




1. 혁신의 시작: 익숙한 성공에서 떠나라. 

내가 지켜본 혁신의 선봉은, 이 방식이 성공하리라고 누구나 믿는 자리에서 떠나는데서 오더라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지만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 변화를 굉장히 빨리 받아들인다. 공격적으로, 미션 수행하듯 변화를 일상화하기 시작한다. 변화가 일상이 되어야 비로소 편안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혁신은 일단 시작되면 확산의 속도는 어마하게 빠르다.

유능한 의사가 모이면 훌륭한 병원이 된다. 최고의 수술은 손길이 예리하고 경험이 많은 숙련된 의사가 최고로 잘한다. 숙련된 의사는 계속 수술을 하면 된다. 매우 중요하고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법의 발견은 수많은 도전과 실험 가운데서 발견되고 검증되면서 찾아진다. 


불치병을 위한 치료법 개발은 솜씨좋은 의사의 손길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숙련된 의사는 이미 그 의사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수술하기에도 바빠서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할 시간이 없다. 그 사람이 혁신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자원에는 24시간이라는 시간적 한계와 체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치료법은 병원에서 가장 수술을 잘하는 의사한테서 나오지 않는다. 다르게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도전이 필요하다. 불치병이 왜 불치병인가? 현재 명의들이 고치지 못하기 때문에 불치병이다. 그렇다면, 그 불치병에 대해 지금 잘나가고 있는 의사는 아무 소용 없는 사람이다. 새로운 치료법은, 현재 최고 명의가 아닌 덕에 시간이 남아도는, 어쩌면 별 볼일이 없어 새롭게 시도하고 탐구하고 도전할 생각과 여유가 많은 사람에게서 나올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불치병을 고치겠다고 스타트업을 시작하고서는 정작 기존 치료법을 바꾸지 않는다. 스타트업을 하려고 모여서 '내가 성공했던 방법'을 버리지 않는다.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겠다고 모여서는 '예전에 잘 치료했던 방법'을 들이미는 식이다. 그 방법이 안먹혀서 새로운 혁신을 찾아나섰다는 사실은 금새 까먹는다. 


이건 내가 볼때는 저주에 가깝다. 왜냐하면 과거의 성공은 '헤어진 애인'과 같기 때문이다. 이제 막 결혼해 우리집을 일궈 나가려는 찰나에, 예전 애인과 행복하게 지냈던 방법을 설명하는 꼴이다. 예전에 이렇게 데이트 해봤더니 그/그녀가 좋아했었다는 거다. 내가 10명 사귀어 봤는데 10명 다 좋아했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내가 10년 연애했는데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는 거다. 아니 그럼, 그 분들과 결혼하지 그러셨어요? 아니 그 방법이 그렇게 좋으면 원래 다니던 대기업 다니지 그러셨어요?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하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그건 그냥 대기업 짝퉁이다. 그런 곳은 '늙은 스타트업'이고, 대기업 '구멍가게 버전'이다. 


2. 스타트업은 팀운동과 같다

인력을 채용할때 많은 경우, '스펙'에 의존해서 뽑는다. 비난할 수 없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뽑아서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볼 것이 몇 가지 없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물을 수도 없고. 그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면접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스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뭔가? '과거 성공했던 경험의 나열'이다. 혁신적인 인재나 기업은 하버드를 다니다가도 기꺼이 중퇴를 하고 (마크 저크버그), 대학 등록금이 모자라 휴학을 하고 청강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스티브 잡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버드 졸업장이 필요하고, 청강보다는 학위 논문을 사랑한다. 그것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의 졸업장과 과거 경험을 확보하면 일단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훌륭한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성공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대와 신뢰'에서 온다고 잠정 결론 내리는 중이다. 조직의 성과는 수퍼 플레이어 한 사람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조직이 신뢰와 기대, 지원과 협력이라는 인풋을 넣었기 때문에 맺은 열매다. 


내가 아무리 안타를 날려도, 다음 타자들이 공을 못치고 헛스윙질만 하면 점수는 안나온다. 조직은 무조건 팀운동과 같다.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조직의 성공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내가 기여할 수 있다. 수퍼 플레어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의 기여한 바가 모여서 점수가 나온다. 한 두 번의 속시원한 홈런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 혼자 잘해서 팀 전체의 승리를 이끌기는 택도 없다. 


조직은, 팀 플레이어를 뽑아야 하고 뽑았으면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다양함의 기준? 점수를 내야 이긴다고 해서 타자만 줄줄이 뽑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포수도 필요하고 투수도 필요하고 내야수, 외야수 다 필요하다. 주구장창 타자랑 투수만 뽑아대는 스타트업이 있다. 몸값 비싼 타자를 뽑느라, 수비가 엉망인 팀이 되어가는 줄도 모른다. 부디, 운이 좋길 바래줄 뿐이다. 


3. 스타트업 성공의 비밀: 좁은 길로 가자 

페이지와 브린은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시절, 차고에서 검색엔진 업체 '구글'을 창업했다. 당시 인터넷 검색 시장의 최강자였던 야후와 알타비스타가 자신들이 만든 검색 엔진을 사주지 않자 직접 차린 회사다. 현재 야후와 알타비스타는 그 존재감조차 미미해 졌지만 구글은 시가총액 9000억 달러의 테크공룡으로 자랐다. 


슬랙 창업자도 그 시작이 대단히 아름답진 않다. 슈트어트 버터필드는 게임 글리치(Glitch)를 만들었다. 스토리라인도 좋고 멋져 보였지만 몇 년 후 결국 정리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게임에 필요해서 만들었던 '메신저'를 상품화 하게 됐다. 그 메신저가 요즘 업무용 메신저로 급부상한 '슬랙(Slack)'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속담이 떠오르는 스토리였다. 


성공의 비밀은 비밀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폭발적으로 성공하는지 끊임없이 본다. 다르게 생각하고, 기존에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어보고, 나와 상이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기존의 성공의 경험을 버리라고 수없이 듣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니까 도전하라고 배우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그 모든 혁신의 키는 주마간산으로 넘어가면서 늘 성공의 비밀에 목마르다. 


이 길로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길이 내가 생각한 아스팔트 길이 아닌 울퉁불퉁 갓길이라 가지 않을 뿐이다. 이 길 말고 다른 길 없어요? 라고 질문하면서 왔던 길로 돌아간다. 그토록 바라는 목적지는 저 울퉁불퉁한 길 끝에 있다. 인원이 적다고 스타트업인가? 하던 것만 하는 기업은 스타트업이 아니다. 기존 비즈니스를 답습하는 기업은 그냥 작은 회사일 뿐이다. 혁신을 이끌어내는 스타트업은 아니다. 혁신은 잘 닦아진 익숙한 그 길이 아니라, 불모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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