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음을 알고 자기다움을 지키는 것!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서울대학교 진로직업교육연구센터에서 개최하는 포럼의 주제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내가 업(業)으로 삼고 있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포럼에 참석하신 분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예감이 든다. 언제나 이런 예측은 빗나가는 법이 없어서 무엇인가 생각을 정리하고 핵심어(Key Word)를 잡아 둘 필요가 생겼다.
내가 이 연구센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모 기업과 컨소시엄으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의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와 관련하여 ‘선취업 후진학’ 교육프로그램을 수년째 진행하면서 청소년·청년들의 진로직업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교 연구센터는 기업의 일선 현장에서 학생들과 호흡을 하면서 진로직업 교육을 직접하고 있는 나에게 호감을 가져서 교육계와 무관한 내가 포럼의 위원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번 포럼의 핵심 주제는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직업교육의 변화를 논하는 것이다. 주제가 주어지자 회사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가족들과 토론을 해보아도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창문 한편에 햇살을 받고 앉아있는 ‘주역’책 한권이 반짝 눈에 들어왔다.
점(占), 일(事), 귀신(神)
주역(周易)은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위로 상(象)을 하늘에서 우러르고 아래로 법을 땅에서 살폈으며 새와 짐승의 모양, 초목의 상태를 관찰해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해, 이로써 비로소 팔괘(八卦)를 만들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정에 비기었다”라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 혹은 伏羲氏, 夏禹氏, 文王)가 64괘로 나누었으며, 문왕이 괘에 사(辭)를 붙여 ≪주역≫이 이루어진 뒤에 그 아들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되었고 이에 공자가 십익을 붙였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들 그리고 심지어는 식물들까지 점(占)을 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를 살펴 꽃잎을 열고, 태풍이 다가오기도 전에 쥐들이 먼저 배에서 도망을 간다. 고등학생 시절, 운동장에서 낮게 날고 있는 제비를 보고 소풍을 가는 다음날에 비가 오는 것을 알아맞혀서 친구들과 맛있는 김밥도시락 내기에서 이긴적이 있다. 우리 안에는 그런 예측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고 분업화되면서 그 능력은 점점 퇴화되어가고 있다. 아니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욕(慾)심이 눈을 가려 그 기색을 살필 겨를이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는 말이다.
오늘날,
주역의 대가들은 “변해야 할 때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씀하신다. 도대체 내가 나인데 나는 어떻게 더 변하란 말인가? 이런 이야기를 학생들하고 나누면 학생들은 소위 ‘맨붕’이 온다. 건(乾)은 하늘을 뜻한다. 이는 곧 내가 부모의 사랑(天命)으로 태어난(性) 완전한 사랑(仁)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말한다. 원(元)은 착한 것이고, 형(亨)은 아름다움의 모임이고, 이(利)는 마땅함의 화합함이요, 정(貞)은 일을 즐기라고 하니, 군자는 이 네 가지 덕(元亨利貞)을 행하는 자라고 주역의 첫 장인 중천건(重天乾)은 가르친다. 내가 군자(君子)이고 덕(德)이자 사랑(仁)인데 도대체 어떻게 더 변하란 말인가?
지난해,
병신(丙申)년을 주역으로 들여다보면 ‘화천대유(火天大有)의 상구효(上九爻)’에 해당된다. 대산은 “화천대유의 상구효가 변하면 뇌천대장(雷天大壯)의 상육효가 되는데 강한 숫염소가 스스로 강한 것만 믿고 날뛰다가 울타리에 뿔이 걸려서 나가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라고 주역의 대가 김석진(金碩鎭)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탄핵의 인용, 기각, 각하를 목전에 두고 있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지도 무엇을 알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하는(無知)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不思)을 지적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제나라 경공景公이 정치가 무엇이냐고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대답하셨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것이다.”
경공이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정말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밥을 얻어먹을 수나 있겠습니까?”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
公曰善哉, 信如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우리는 각자가 자기 일을 잘하는 덕분에 다 밥을 잘 얻어먹고 있다.
(안심논어, 안현 11)
'君君臣臣父父子子'는 자기가 자기다움을 알고 자기다음을 지키는 것으로, 그것이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새로운 변화에 대비하는 기장 기본적인 삶의 원리가 아닐까? 나는, 이번 포럼의 주제인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직업교육의 핵심은 나(자신)를 돌아보는 변화를 논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서 전혀 다른 원리가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원리는 모든 변화를 지켜주는 것이다. 때가 되면 바꾸는 것을 원리라고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영상강의를 열어 후학들에게 주역의 가르침을 전해주고 계신 '전헌'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더욱 소중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