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 피어나는 계절

걸음 셋: 일상 속 빛을 만나다

by 그루 햇살나무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어떤 이는 햇살이 길을 비추는 봄을 걷고, 또 어떤 이는 서리가 마음의 창턱에 내려앉은 겨울을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 삶은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오늘도 이어지는 여정이다. 이 글은 그 길 위에서 마주한 작고 소중한 빛을 담아본 한 계절의 이야기다.

피조아(Feijoa)는 뉴질랜드의 가을이 내어주는 연둣빛 선물이다. 4월이 되면 키위보다 조금 갸름한 모양의 그 열매가 지천으로 열린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무렵, 옆집 현지인 할머니가 건네주었지만, 낯선 다정함을 그땐 미처 다 소화해 내지 못했다. 후에 새콤달콤한 맛과 피로를 풀어주는 그 청량함에 매료된 후로는, 매년 가을 그 초록 열매가 내어주는 작은 위로를 기다린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피조아. 먹기 좋게 익으면 스스로 땅에 떨어지는데, 그것은 가져가도 좋다는 친절한 신호다. 혹여 자연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 가지에 매달린 것을 따려 하면, 성급한 이에게는 본래의 맛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넉넉히 내어주어 발밑이 작은 풍요로 채워지지만, 그 신선함을 오래 간직할 수는 없다. 이내 물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피조아는 제때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법을 배우라 일러주는지도 모른다. 성급하게 손을 뻗지 않아도, 삶이 허락한 몫은 이미 발치에 충분하다고. 내일의 것을 앞당겨 움켜쥐려 하면 오늘의 반짝임은 속절없이 놓치고, 정작 내일의 기쁨마저 옅어지고 만다고. 초록 열매 하나가 발밑에서 나지막이 건네는 목소리다.


이를 가만히 배운 이들은 눈앞의 풍요를 움켜쥐는 대신, 소박한 종이봉지에 담아 담벼락 너머로 밀어내 놓는다. 투박하게 적힌 ‘Free’라는 글자 위로, 오늘의 행운을 이름 모를 누군가와 나누려는 온기가 가만히 머문다. 삶은 내일도 필요한 만큼 새로이 내어줄 테니, 오늘 넘치는 것은 그저 길 위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행복은 잡히지 않는 안개나 무지개 끝처럼 아득한 곳에만 있지 않다. 오늘, 우리의 울타리 아래에 이미 소리 없이 소박한 모습으로 와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결혼을 하면, 집을 사면, 아이가 자라면...’ 우리는 마음속에 수많은 푯말을 세우며, 행복을 저만치 앞날에 걸어둔다. 물론 내일을 향한 바람이 지친 오늘의 위로가 되기도,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빛은 단 하나의 계절에만 깃들지 않는다. 겨울에 봄볕의 개나리를 그리워할 수는 있어도, 억지로 피우려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차라리 눈송이 내려앉은 풍경 속에 잠시 머물며, 오늘만이 지닌 빛을 조용히 품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오늘은 더없이 충분하다.

인생의 매 순간은 피조아 하나가 익어가는 시간과 닮아 있다. 여린 꽃잎을 떨궈낸 자리에 수줍게 맺히던 시작의 떨림, 비바람을 견디며 단단하게 제 안의 맛을 채워가던 치열한 성장, 그리고 마침내 충분히 무거워진 몸을 기꺼이 땅으로 뉘는 노년의 낙과(落果)까지.


피조아가 땅에 몸을 뉘어 잠시 머무는 동안 비로소 가장 깊은 향을 완성하듯, 우리 삶의 모든 장 또한 제때를 기다려 저마다의 빛깔로 무르익는다. 그 치열했던 흔들림과 묵묵히 자리를 지켜낸 애씀은, 결국 땅 위에서 세월이 빚어낸 그윽한 향기로 피어오른다.


영원의 시간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시절은 짧고도 특별한 생의 조각들이다. 어떤 계절은 폭풍이었고 어떤 계절은 햇살이었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살아 있음'이라는 이름으로 내 발치에 떨어진 가장 귀한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가만히 마음에 담는다.


오늘 문 앞에 찾아온 행복, 그 빛은 무엇일까? 계절이 지나기 전, 이미 곁에서 고요히 숨 쉬는 소중함을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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