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외취업을 왜 했더라?

국내 취업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by Sunny

2012년 즈음 공채를 준비할 때, 나는 취업 준비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취업이 그 정도로 어려운지 정말 몰랐다. 학벌 간에 차이도 있겠지만, 같은 학교 안에서도 상경계열 (경영, 경제)를 전공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에 따라서 취업의 온도차가 확연히 났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10개 서류 정도를 쓰면 2~3개 간신히 통과할까 말까였다 (그마저도 그 이후엔 수많은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고시를 준비하던 친구 말로는 너는 그래도 여기 떨어져도 다른데 또 쓰면 되지만, 자기는 1년 공부하던 시험 떨어지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그랬다. 미안하지만 위로가 안됐다.


나도 너무 나만의 생각에 갇혀서 그 친구를 공감하지 못했던 걸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반복된 불합격은 뭔가 내 삶을 송두리째 반복해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 배경에는 채용에서도 한국 기업들 특유의 '갑질 문화'가 있어서 더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채용 프로세스였다. 서류를 제출할 때 나의 학력을 포함해 기본적인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 정도는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왜 내 부모님, 형제 가족 관계, 그분들의 나이와 학력 등을 제공해야 하는지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한국 기업들의 생리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실적으로 몇 만 명이 지원하는 자기소개서를 몇 천자씩 왜 써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그 글자 수를 채우는 과정 역시 힘들었다. 솔직히 읽지도 않는데 왜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학교 주관으로 참석한 취업캠프에서 L모 대기업 인사담당자에 따르면 자기소개서 어차피 서류 검사할 때 첫 페이지만 읽고 나머진 안 읽는다고 했다 (물론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우린 ‘자소설'이라는 말을 일종의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채용 현실(?)로 생각했다. 진짜 그 많은 몇천 자씩 되는 페이지를 정말 순수하게 자기 얘기로만 꾸밈없이 쓴 사람도 있겠지만, 장담하건대 결코 쉬운 일 아닐 거다. 그런 사람 꼽으라면 몇 안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채용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은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사람을 곱게 보는 시선이 아니었기에,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다. No라고 얘기할 때 지인들조차 나를 한국 문화의 부적응자로 취급했다. 그네들의 잘못된 기업 문화를 비난하지 않았다. 한국은 한마디로 '왜?'라는 질문이 쉽게 허용되는 사회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해외취업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더 이상 그런 불필요한, 쓸데없는 채용 프로세스를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레쥬메에는 나의 이력과 함께 사진은 필수가 아니었다. 불필요한 가족관계를 증명할 필요도 없었고, 몇천 자의 자기소개서도 쓸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구글은 커버레터가 굳이 필요 없다고 입사지원 페이지에 명시돼있다. 물론 외국 회사들의 그런 배경에는 지독한 실용주의 & 성과중심 문화가 자리 잡아 있지만)


면접 역시 한국과 달랐다. 한국 대기업들은 진짜 면접 공장처럼 면접관들도 그룹 단위, 지원자들도 그룹 단위로 우르르 들어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몇 분뿐인데 과연 그 시간 안에 나라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걸까? 항상 의문이었다. 면접관 혹은 회사에 관해 궁금한 점을 물을 기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외국 회사와 처음으로 해외취업 면접을 봤던 그날을 기억한다. 1시간 동안 채용 담당자와 영어로 1:1 전화 면접을 봤다. 총 30여 개의 질문을 받았다. '아 이 회사는 정말로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 오롯이 이 시간을 투자하는구나'라는 인상을 받아서 좋았다. 옆 사람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지 비교하지 않아도 됐다. 이 중 누군가는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느끼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에서 일한 기간보다 외국에서 일한 경력이 더 길다. 최근 본 영어 면접 역시 모두 외국회사다. 지금은 한국 회사의 채용 문화가 얼마나 더 발전했는지는 모르겠다. 간간이 들려오는 링크드인 피드를 보면 갈 길이 멀다고 느낄 때가 있다. 외국 회사 역시 채용팀이라고 해도 워낙 인원수가 많아서 채용 문화를 꼭 집어서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히 한국 회사들이 배워야 할 점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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