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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ug 08. 2021

그 유명한 회사를 왜 나왔어요?

회사 네임밸류가 전부는 아니더라.

유명 미국계 Tech 회사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4년 여간 일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해외취업을 준비하던 나의 의도는 다소 불순했다. 그저 나는 해외 취업이 하고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걸 목표로 했다. IT 업계에서 일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복지 좋고 유명한 회사에 한 번 다녀보고 싶었다. 남자로 치면 그냥 안정적으로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당시에 나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목표가 없었다.


A사는 그런 나의 직장 이상형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친절한 동료들, 화기애애한 회사 분위기, 어느 회사와 비교해도 상위권인 복지 수준. 완벽한 회사 네임 밸류 덕분에 부모님은 항상 내가 A사에서 일한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셨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직무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첫 번째 직무는 A회사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성격의 업무였다. 그 경력을 가지고 마땅히 다른 회사나 부서로 이직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두 번째 직무는 기술 지원 업무였다. 우리 회사 제품과 솔루션을 쓰다가 생긴 기술적인 이슈 해결을 도왔다. 기술적인 부분, 언어 모두 쉽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하루 종일 말을 하며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하는 일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루에 5~6시간씩 쉬지 않고 영어로 얘기한 날엔 너무 힘들었다. 집에 갈 때 온몸이 저렸다. 말을 하면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경력 없는 외국인이 신입으로 입사해서 A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회사는 나의 학벌, 스펙, 경력 등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매니저와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한국인'이 '급하게'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스펙으로 들어온 다른 한국인 동료들 중 상당수가 1~2년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싱가포르를 아예 떠난 경우도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암묵적인 사실은

내가 원하는 업무를 이 회사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떠난 동료들은 다양한 곳에서 각자가 원하는 업무를 하게 됐다. 헤드헌팅 회사를 거쳐 스타트업의 HR 업무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IT 회사에서 세일즈 업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술지원팀 일을 하다 테크니컬 어카운트 매니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원하는 일을 당장 할 수가 없었기에 그 좋은 네임밸류, 복지를 뒤로 하고 다들 떠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외취업은 신입에게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주위에 원하는 직무를 하는 사람들만 봐도 다들 한국에서 적어도 2~3년 관련 경력을 쌓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은 원하는 직무를 하더라도 한국보다 신입에게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주거나, 혹은 연봉 조건이 좋지 않기도 했다.


물론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전혀 다른 직무 간에도 역량이 되면 충분히 부서 이동이 가능한 회사도 있다. 다른 나라 지사 간에 비자 지원도 적극적으로 해주는 곳도 있다. 이 모든 건 본인의 개인 역량과 상황이 뒷받침돼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는 회사에서 내가 맡은 직무를 매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 네임밸류만 보고 입사했다가 직무가 맞지 않아 퇴사하는 한국인 동료들을 나는 수없이 많이 봤다. 마치 대학교 네임 밸류만 보고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해서 마음고생하는 것과 같다. 대학교는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는 입사 후 직무 전환이 생각보다 어려운 경우도 있다.


유명한 회사에 다녀보는 것도 분명 좋은 경험이 된다. 그렇지만 입사가 끝이 아니다. 이 직무가 정말 하고 싶은지? 없다면 다른 직무로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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