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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DAK 노닥 Sep 20. 2021

야간산책

그것은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매일 밤

걸어다니기 편한 신을 신고 

이어폰을 귀에 꽃는다. 그러면 야간산책 할 준비는 완료 된다. 


언제부터 야간산책을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요 1년 사이에 좋아졌다고 말할테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니는 사람은 언제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나 같은 경우 야간은 꿈도 꾸지 않고서 낮, 그래도 아직 빛이 비취는 그 시간을 골라 나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저물기 전에 돌아오면 몇 장 정도는 필름에 새겼다는 마음의 안정감이 들었다. 


군대에서 보직상, 야간퇴근이 익숙했던 나는 수요일과 토요일, 저물어버려서 이제는 더이상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 저녁에 생활관으로 복귀했다. 예배가 모두 끝나면 잔잔하게 모든 버튼을 꺼버리고 사무실에서 오분정도 그날 간식으로 나온 주스를 마시는 것이 일종의 힐링이었다. 

땅거미들도 포식활동을 멈추고 집으로 쏙 들어간 그 때를 돌아다니면 마치 난 어둠 속에서 숨어 위장공격을 벌이려는 특수부대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기를 든 사람이 거리를 포착하기 위해 배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싹- 사라져야만 하는 그 때를 느껴본 이후에 나는 야간에 생활관으로 올라가는 그 시간이 오히려 좋아졌다. 

라이카M6/ 주마론35미리/ 코닥 컬러플러스200. 종근당의 육교 위에서 찍은 필름장노출의 모습

제대 이후, 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개와 늑대를 알아보기 어려운, 어둠이 스산하게 깔리는 그 시간)에 신발끈을 꼼꼼히 묶고 난 다음에 집을 나섰다. 

확실히 야간의 공기가 무겁다. 여간해서는 낮에 맡지 못할 냄새들은 천천히 코 속으로 들어온다. 아스팔트에 스며든 사람 사는 향기가 자기 주장을 하면서 올라오는 그 느낌이 좋다. 

스산한 밤이라고만 생각하면 우리는 그 시간동안 일어나는 기적과 같은 일을 터부로 넘겨버릴지 모른다.

야간산책을 하면 꼭 만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빛이다. 

그건 낮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야간산책에서 더 큰 '은혜'로 다가온다. 부족한 노출 속에서 한줄기 빛이 선명하게 내리쬐는 그 모습에서 사진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면 언제나 셔터 릴리즈 속도를 벌브B에 둔다(누르는 만큼 셔터가 열리는 것을 말함). 

빛 한줄기가 그날의 거리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오묘한 색감을 낸다. 이 색감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서울로 산책을 하다가 나온 색감의 향연, 후지Xtra400의 색감이 아주 흡족하다. 노랑, 연녹, 초록, 적색, 푸른색, 보라의 모든 계열의 색감이 저녁에 어우러진다. 

서울에서 야간에 이어폰을 끼고 바쁘게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수상한 사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50퍼센트의 확률로 내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아니라면, 야간산책의 진면목을 알아차린 누군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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