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DAK 노닥 Sep 24. 2021

대양

빛을 빚지다.

처음 바다를 본 것이 언젤까. 바꿔 말하자면 바다를 사랑하게 된 때가 본격적으로 언제일까, 생각해보면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마 청소년부 교회 수련회 때에 간 그 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날의 기억이 참으로 선명하다. 우리는 도란도란 모조 캠프파이어(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랑만 파 두었고) 앞에서 둥그렇게 앉아 기타를 치며 놀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적 공간에서의 시끄러움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행동이라 부끄럽지만, 다행히 지금 기억으로는 그 저녁 바다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으니 상관 없다. 

도란도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다가 대화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회의장을 찾고 있다면 바다를 가면 된다. 대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비릿한 향기와 불어오는 바람, 거기에 딸려오는 파도소리까지. 미술 작품으로 이야기한다면 <바다> 한 장은 덧대어 바른 유화가 아닐까-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재미있다. 


2019. 후쿠오카 모모치 해변, 라이카 바르낙 IIIC/ 캐논 세레나 28mm/ 필름 후지 프로비아 100F 

각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바다의 특징 또한 비교할 만 하여 재미있다. 어떤 면을 비교할 수 있는가? 그 바다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구별해낼 수 있다.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바다와 그물이 얼기설기 방치되어 있는 바다도 있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이 바다를 단순히 관광상품을 제공하는 일터로만 보는지, 하나의 장엄한 자연으로 보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니다 해변가와 맞닿은 도시에 도착하면 무조건적으로 바다를 갈 수 있는지 동선부터 체크하는 편이다. 

라이카M4/ 보이그랜더 15mm/ 코닥 컬러플러스 200

여행지에서 바다를 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한시가 급한 것이 여행인데 바다에 앉아 거반 두 세시간은 떼울 수 있으니 말이다. 

바다는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의 사랑을 받을까? 난 단언코 이 물에는 원래 사랑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바다는 그저 소금물에 불과할 따름이며, 용수로 사용할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바다는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지리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고대 문명을 결정지은 4개의 강과 같이 바다를 인접해 있는 나라들은 바람과 바다에 실려 다른 국가들과 관계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세계관과 세계관의 충돌이니 아름답고 또한 두려운 결과를 낳는다. 

그 이야기가 한 겹, 한 겹. 크루아상의 결과 같이 쌓이고 쌓일 때마다 우리들은 바다를 동경하기 시작한다. 저 푸른 물, 깊은 곳엔 무엇이 사는지도 모르는 저 망망대해를 묵상하게 되는 것이다. 



롤라이코드(중형 포맷 필름카메라) / 포트라400

"바다를 보았는데, 

바다는 육지에서 느껴본 바다와는 다르게 새커멓고, 잠잠했다. 

우리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얌전하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 고요의 침묵 속에서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익숙한 노랫가락을 어설프게 불러야만 했다. 

검다고 완전히 검은 색이 아닌, 비행기의 그림자가 사무칠 정도의 어두운 빛. 

그리고 아무 소리 없다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돌고래떼와 바다범들의 울음소리. 

사뭇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이 바다를 개척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고요하고, 얌전한 곳. 그곳에서는 어떤 폭력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공포스러운 곳이다. " 


-김성일, <대양> 

작가의 이전글 소슬바람 곁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