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수필 <2년에 한 번>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던 집을 세어봤습니다. 모두 16곳. 각 집마다 머무른 기간은 다 다르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닌 격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될까요? 죽을 때까지 저는 몇 개의 방을 거치게 될까요.
끊임없이 집을 구하고 짐을 싸고 풀면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때로는 비를 피할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쯤 그 모든 방들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풍수지리 인테리어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됐다.
복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는다.
제발 넘어지더라도 남들이 안보는 데서 넘어지고, 무릎이 까진다 해도 좀 빨리 낫기를 비는 정도의 소박한 바람이랄까.
예전에도 ‘침대 머리를 화장실로 향하지 않는다’와 같은 간단한 것은 지켜왔지만 요샌 책상 방향이나 화분 위치 같은 것까지 풍수지리를 참고한다. 물론 정확한 정보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미신 같은 얘기들이다.
일단 우리 집의 방위와 구조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현관이 동쪽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왼쪽에 바로 문이 있는데 그건 화장실이다. 방과 현관 사이에 작은 주방과 베란다가 있고 방에는 서쪽으로 난 꽤 큰 창이 있다.
원래는 책상이 현관으로 통하는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문을 마주 보고 앉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최근 문이 옆으로 보이도록 방향을 틀어보았다. 책상 방향에 관한 건 워낙 설이 분분해서 풍수상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눈 앞에 문이 아니라 책이 놓인 흰 벽이 보이니 조금 더 집중이 되는 기분이긴 하다.
또 한 번은 현관에 초록 식물을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그렇다… 마냥 소박한 바람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얘기에 귀가 팔랑여서 내 옆구리쯤 오는 기다란 수경재배 대나무를 현관에 내다 둔 적이 있다. 하지만 현관이 한 사람이 신발 벗기에도 옹색할 정도로 공간이 좁아서 얼마 되지 않아 때려치웠다. 대신 지금은 현관 왼쪽 벽에 행잉 플랜트를 걸어두었다. 부디 풍수지리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그러나 이 집엔 내가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현관에서 화장실이 바로 보이면 좋지 않다는데(일각에선 망신수가 있다는 얘기가…) 문 열자마자 보이는 게 화장실이니…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어쩌라고…
그래도 또 어디에선가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가리기라도 하라’는 말을 주워듣고 심기일전했다. 문을 닫아 놓는 것도 방법이지만 창문이 없는 우리 집 화장실은 습기가 차지 않도록 문을 자주 열어둬야 하기에 다이소에서 ‘압축봉 커튼’이란 걸 사다 달기로 했다. 압축봉 커튼이란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막대를 벽과 벽 사이에 끼우듯이 설치하는 커튼이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환기도 되고, 시선도 차단해주고. 심지어는 얼마 전 집에 놀러 온 동생이 “이거 뭐야? 이쁘다”라고 칭찬까지 해줘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벌써 복이 들어오고 있는 건가?
죄송해요 아빠… 미신을 싫어했던 아빠에게 이런 걸 해서.
아빠 뜻에 거스르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그래도 그 뭐냐…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모처럼 산 땅이니 제대로 인사를 해두고 싶거든요. 아빠도 꼭 놀러 오세요.
<지어보세, 전통가옥!> 중에서
전에 소개한 집짓기 만화, <지어보세, 전통가옥!>에는 주인공인 작가가 집터에서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소개돼 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아빠의 묘를 찾아가 올리는 기도다.
마음의 문제. 그치. 다마음의 문제지.
풍수지리가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될지야 누가 알겠나. 하지만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년 입춘에는 문지방에 ‘입춘대길 건양다경’도 써 붙여야겠다.
아... 이건 풍수지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