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마지막 방

세입자 수필 <2년에 한 번>

by 집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던 집을 세어봤습니다. 모두 16곳. 각 집마다 머무른 기간은 다 다르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닌 격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될까요? 죽을 때까지 저는 몇 개의 방을 거치게 될까요.


끊임없이 집을 구하고 짐을 싸고 풀면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때로는 비를 피할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쯤 그 모든 방들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16_마지막 방


무슨 말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지난해 초여름, 출근을 하려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래층 집의 문이 열려있었다. 낯선 사람 두 명이 방안에 서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바닥에 누운 할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할아버지는 옆을 본 채로 누워계셨는데 많이 아프신지 미동조차 없었다.


‘너무 아파서 119에 전화하셨나?’


집 밖으로 나왔는데 건물 앞에 구급차가 아닌 경찰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고독사’라는 걸.


밤에 이불을 덮고 누우면 가끔은 이런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렇게 자다가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될까?’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맞이하는 죽음. 그건 아마 세상에서 가장 깊고 묵직한 ‘고요’ 일 것이다. 짐작조차할 수 없을 만큼 쓸쓸하고 또 괴로울 것만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죽음은 오직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반문이 든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잠 속으로 툭 떨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방에서 죽음과 단둘이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이 슬픈 이야기다. 올 한 해, 수많은 죽음 가운데 내 마음속 깊숙이 들어온 사건 몇 개가 있다. 수개월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사업가와 빗물에 익사한 90대 노인의 죽음이다.


이 사업가는 책도 쓰고, 인터뷰도 많이 한 사람이었다. 업계의 ‘신화’로도 불리며 일반인들에게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가 운영하던 업체가 도산 위기에 놓였다는 뉴스가 나온 지얼마 되지 않아 그의 부고가 들려왔다. 사인은 자살. 약속이나 한듯 그가 젊은 나이에 거둔 성공 스토리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이 사업가가 살던 집이었다.


TV에 나온 그의 집은 강남 모처에 있는 빌라. 연예인이나 살듯한 고급 빌라가 아니라 그냥 내 동생이나 친구들도 살았던 그런 평범한 원룸 중 하나였다. 그 집에 살면서 사업을 일으키고, 회사를 살릴 자금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러 다녔을 그는 결국엔 그곳에서 목을 맸다. 전국 도처에 그가 몸 담았던 브랜드의 매장이 없는 곳이 없었지만 그의 쉴 곳은 결국 그 방 한 칸이었다.


지난여름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익사한 90대 할아버지는 반지하에 살고 계셨다. 몸이 아파 거동이 힘들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1층 주인집에 도움을 구하러 간 그 잠깐 사이 방에 들어찬 빗물에 익사했다. 한 평생 반지하를 면하기 어려웠던 그 가난이란 건 대체 얼마나 끈질긴 것이며 그래서 벌어진 이 죽음은 또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들 노부부에게 ‘지상층’은 어떤 의미일까.


며칠 전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젊다 못해 어린 아이돌이 우울을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집도, 차도 아닌 레지던스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곳을 예약하고, 거기로 걸어 들어가 침대에 누웠을 때. 그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에게 익숙했을 그 어떤 공간도 그에게 안식을 주지는 못했던걸까.


우울증 환자라고 하기에 생전 그의 모습은 단 한순간도 밝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가 남긴 노래들도 하나같이 아프고 쓸쓸한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내용들뿐이다. 이런 사실이 남은 사람들을 더욱 참담하게 한다.


지상 어디에서도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지 못했던 이들이 부디 하늘에서는 평화를 찾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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