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수필 <2년에 한 번>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았던 집을 세어봤습니다. 모두 16곳. 각 집마다 머무른 기간은 다 다르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닌 격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있게 될까요? 죽을 때까지 저는 몇 개의 방을 거치게 될까요.
끊임없이 집을 구하고 짐을 싸고 풀면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때로는 비를 피할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쯤 그 모든 방들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4,761
수원시지속가능재단이란 곳에서 최근 수원시 주거실태를 조사했다. 전체 가구의 1%에 해당하는 4,761가구에는 입식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 온수 샤워시설이 없다고 한다. 전국으로 펼쳐보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과연 이들의 하루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실은 내 인생에도 저 4,761곳에 해당하는 집이 몇 군데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새하얀 눈이 내리던 겨울이었다. 시커먼 무쇠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물을 바가지로 퍼다가 찬물에 부어 온도를 맞춰주던 엄마의 조용한 분주함 같은 것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는데도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엄마 손을 붙들고 마당 구석에 있는 으슥한 화장실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나의 세번째 집에 대한 기억이다. 그땐 그게 불편하다고도, 힘들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걸 일상이고 생활이라고 부를 것이다. 게다가 난 엄마의 보호 아래 있던 작디 작은 아이였으니까.
가족과 집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면 현실은 더욱 적나라하다. 그 전까지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절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새내기 시절 학교후문 전봇대에 더덕더덕 붙어있던 '잠만 자는 방'이 대체 뭔지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잠만 자는 방. 부엌도 없고 개인 화장실과 욕실도 없고 그냥 방만 있는 단칸방을 그렇게 불렀다. 나도 20대 초반엔 부엌도 없고 공용 화장실을 쓰는 집에 살았다. 어차피 주방이 있는 친구들도 밥을 잘 안 해 먹었으니까, 취사 시설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공동 화장실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었다.
공동 화장실을 써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몇 가지 디테일이 있다. 공동 화장실은 항상 문을 잠그고 써야 한다. 그런 습관 이 몸에 밴 채 오랜만에 고향 집에 내려가서는 나도 모르게 화장실 문을 잠그는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욕실에 샴푸나 칫솔을 둘 수도 없어서 축축한 목욕 바구니를 방 안에 보관해야 한다는 점도 있다.
그 모든 복합적인 ‘싫음’이 집약된 곳이 10번째 집 화장실이었다. 고시원 치고 방이 넓고 창문도 달려있어 선택했지만, 화장실과 욕실이 한 층에 하나밖에 없었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무려 여덟 집이 공유했던 그 화장실은 공중화장실에서나 쓰는 연녹색 칸막이로 변기와 샤워실을 구분한 형태였다. 남녀공용이었기 때문에 욕실 한 구석엔 소변기도 놓여 있었다. 거기서 씻고 나오면 늘 씻어도 다 씻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옷을 다 입고 나서야 미처 닦아내지 못한 비눗물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는 욕실 딸린 방 한 칸이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모른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을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24시간 공유해야 한다는 게 참. 나만의 화장실을 갖게 된지도 어느덧 3년이다. 우리집 화장실 천장에서는 얼마전부터 물이 새 내 속을 뒤집어 놨지만 이렇게 옛날을 추억해보니 이것마저도 감사해야하는 건가 싶다. 웬수같은 너란 화장실.
아, 아까 그 4,761가구 말이다. 다행히 시에서 주거 환경 개선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그나마 세상이 어떤 사람들의 화장실이나 욕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