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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순 Jun 21. 2020

[어드밴스드_08] 경찰차의 추격을 받다

굴러가 어쨌든


2018년 5월, 할머니와 엄마, 이모 나 이렇게 넷이서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모녀 3대가 함께 가는 첫 여행이었다. 엄마가 그러길 어느날 문득 할머니 연세를 생각해보니 새삼 세월이 가는 게 무서웠단다. 더 늦기 전에 함께 여행이나 가자고 내게 플랜을 짤 것을 주문하셨다.


내 의지로 여행이란 걸 가게 된 게 스무 살이 넘어서였고,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둘이 여행을 간 것이 지금으로부터 고작 5년 전이다. 처음에는 먹고 사는게 바빠서, 돈이 무서워서 여행을 못갔고 나중엔 그게 인이 박혔다. 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모두 그런 인생을 살아왔다. 가까운 데라도 나가서 바람 쐬고 오자고 해도 ‘뭐 하러 밖에서 시간 쓰고 돈 쓰느냐’는 그녀들의 반응을 조금은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 제주도 여행만큼은 어떤 이의도 제기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는 여행 전에 나들이 옷도 장만하시고 파마도 새로 하셨다. 엄마와 이모도 며칠 전부터 여행 짐을 꾸리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여행가이드이자 운전기사이자 짐꾼인 나는 나대로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여행 당일 나의 일정은 대략 이랬다. 먼저 예약해둔 그린카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간다. 차를 반납하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픽업한다. 렌터카를 타고 공항으로 다시 돌아와 광주에서 날아오는 할머니와 엄마, 이모를 태우고 여행을 시작한다!


길을 헤맬걸 대비해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이라 도로엔 차가 없었고 생각보다 일찍 김포시에 진입했다. 그런데 공항으로 가는 길이 영 쉽지가 않았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두리번거리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경찰차 한 대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왔다. ‘모범 시민인 내가 뭐 잘못한 게 있겠어?’하고 그냥 가는데 경찰차가 무전기로 차 번호를 부르며 차를 세우라고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내 차 번호를 몰랐다. 당연하다. 그날 처음으로 탄 차 번호를 어떻게 알겠냐고...


설마하며 차를 갓길에 세우니 경찰차가 정말로 따라 멈췄다. 차에서 내린 경찰이 내게 다가와 때아닌 음주 측정을 요구한다. 음주 측정을 뭐 이렇게 적극적으로? 차선도 잘 맞춰서 운전했는데... 측정기를 성심성의 껏 불고 토끼눈으로 쳐다보는 내게 경찰이 이렇게 말했다.


“아... 별건 아니구. 사이드 미러가 접혀 있어서요.”

뭐라?

내가 어버버하며 답했다.

“그...그럴리가 없는데요. 이거 자동인데…”

그는 단호했다.

“아뇨. 접혀 있어요.”

“무슨 그런…”

하고 보는데,

.

.

.

접혀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것도 왼쪽만 접혀있고 오른쪽은 펴져있다! 나는 그럼 약 한시간 동안 뭘 보며 운전을 했다는 말인가. 바람이 너무 세서 사이드 미러를 접어버린 건 아닐까? 비둘기가 날아가다가 발톱으로 쳐서 사이드 미러를 접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허나 어떤 이유이건 간에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궁지에 몰렸을 땐 자고로 정공법이 최고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긍정적이고 방정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유, 제가 초보여서요. 으하하하하하핫!


경찰님은 안전운전 하라며 나를 훈방해주셨다. 쪽팔림으로 정신이 나간 채 어느덧 김포공항 근처에 도착했다. 이번엔 차를 반납할 그린존을 찾는 게 문제였다. 길 건너에 주차장이 뻔히 보이는데 들어가는 길을 못 찾아서 그 일대를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방황하길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주차에 성공하고 공항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뭔가가 허전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갑이 없었다. 물론 그 지갑에는 카드와 비행기에 타기 위해 필요한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다시 차로 뛰어갔다. 차 앞에서 그린카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지갑을 놓고 내린 것 같다고 하니 상담 직원이 차 문을 열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신호음과 함께 정말 차 문이 열렸다. 다행이 지갑은 차 안에 있었다. 지갑을 쥐고 공항으로 전력질주했다.


지갑이었기에 망정이지, 스마트폰을 차 안에 두고 내렸으면 콜센터에 연락도 못할 뻔 했다. 만약에 지갑을 차가 아닌 편의점에 두고 왔다면? 아... 너무도 아찔하다. 그만 상상하도록 하자...


따스한 제주도의 햇살이 만신창이가 된 나를 반겨줬다. 렌터카를 픽업해 공항에서 기다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와 이모, 엄마가 거의 춤을 추다시피 손을 흔들며 차로 다가왔다. 저 해맑은 여인들을 안전하게 모셔야 할텐데. 부디 여행 전에 벌어진 일이 액땜이기를 바라며 나는 차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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